초보 반려인 정이현 작가의 어설픈 분투기

입력 2025-06-13 00:08 수정 2025-06-13 00:08
소설가 정이현은 산문집 ‘어린 개가 왔다’에서 반려견 ‘루돌이’를 만난 뒤 이전과는 다른 세계를 마주하게 됐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루돌이를 통해 차원이 다른 사랑을 느끼게 됐다고 고백한다. 정이현 소설가 제공

‘달콤한 나의 도시’를 쓴 소설가 정이현은 어머니의 영향 때문인지 어려서부터 개를 무서워했다. 동물과 접촉할 기회를 열심히 피해 다니면서 평생 개와 가까워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러다 2022년 12월, 생후 3개월 된 ‘어린 개’ 한 마리를 입양하게 된다. 10대인 두 딸이 수시로 유기 동물 보호소의 SNS를 들여다보다가 입양되지 않은 강아지를 데려오자고 조른 결과다. 남편도 거들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책은 ‘어느 날 비자발적으로 어린 개와 살게 된 초보 반려인의 좌충우돌 모험담이자 분투기’다. 작가는 부제로 ‘어린 개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살았을 것들’ 혹은 ‘어린 개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살았겠지만 모르는지도 몰랐을 것들’을 제안했다. 여기에 ‘한 세계가 다른 세계를 만나 변화한 것들’이라는 부제도 덧붙이고 싶다.


‘어린 개’의 이름은 ‘루돌이’.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 마침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이라 ‘루돌프’에서 따온 이름이다. 야생에서 태어나 구조된 루돌이가 인간의 집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했다. 작가는 속으로 ‘너를 구조해주고 잘해주려고 노력하는데 왜 이렇게 비협조적이니’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인간으로서 “건방지고 오만한” 생각이라고 마음을 고쳐먹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루돌이의 거친 행동에 특별히 도움을 청한 훈련사가 건넨 “이 아이가 지금 얼마나 겁나고 무섭겠냐”는 한 마디 때문이었다. 작가는 “인간인 나는 당연히 인간이 당황스럽고 무서운 것만 생각했다. 나의 곤란에 대해서만 걱정했다”고 자책한다.

책에 실린 삽화. 한겨레출판 제공

작가는 “산책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었다”고 했다. 귀찮다는 게 이유였다. 어디까지나 과거형이다. 작가는 하루에 두 번 혹은 세 번 반드시 집 밖으로 나가 동네 오솔길을 반복해 걷는 ‘프로 산책러’로 거듭났다. ‘귀찮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를 극복하게 만드는 ‘초강력 변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어린 개와 사는 것은 그 전에 모르고 지났던, 모르고 지나도 아무 문제 없었던 삶의 여러 지평이 갑자기 넓어지는 일이었다”면서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내가 활보하는 ‘동네’의 영역이 훨씬 넓어졌다”고 말한다.

책에 실린 삽화. 한겨레출판 제공

작가는 사는 동안 몇 번의 전환기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술을 마시기 전·후, 소설을 쓰기 전·후, 운전하기 전·후, 출산과 육아를 하기 전·후. 루돌이를 만나기 전과 후는 그에게 더더욱 특별한 변곡점이다. 습관적 회의감과 자기 모멸감이 들 때마다 “매일 성실하게 개를 돌보고 의무적으로 산책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떠 올린다. 작가는 “그러면 나쁜 기분이 좀 가라앉고, 스스로 아주 형편없는 사람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개의 리듬에 맞춘 단순한 일상이 주는 안정감과 회복력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어린 개는 사랑에 관한 한 작가의 스승이다. 작가는 “루돌이가 주는 절대적인 사랑과 경의에 종종 면구함을 느낀다”고 한다. 루돌이는 작가를 발견하면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온다. 꼬리를 흔들다 못해 엉덩이를 전체를 흔들고, 발등에 몸을 비빈다. 작가가 쓰다듬으면 그것으로 되었다는 듯 눈을 꼭 감는다.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섭섭해하지도 않고 머리도 굴리지 않는다. 작가는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어도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리라는 이토록 완전무결한 믿음을 내게 준 존재는 루돌이가 처음이다. 차원이 다른 사랑”이라며 “일찍부터 개라는 종과 가까웠더라면 나는 지금과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속이 더 따뜻하고 말캉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책에 실린 삽화. 한겨레출판 제공

책에는 ‘반려견 동반 가능’이라는 문구에 담긴 교묘한 차별과 자본주의적 상술에 대한 비판, 루돌이 엄마의 일생을 통해 본 유기견의 아픈 실태 등도 담겨 있다. 책 인세의 일부는 루돌이가 구조됐던 유기견 보호단체의 활동을 위해 기부된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