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직장 상사를 맞는 사람들이 뭐 피했더니 뭐가 오더라면서 하는 말이다. “살다살다 나 또 이런 사람은 처음이네. 그래도 이전 상사는 ○○한 면은 있었어. 그지?”라면서 장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았던 전임 상사의 장점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인간은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타인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잘 인식하지만 나를 편하게 해준 것은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타인이 자신에게 불편을 주는 것을 두드러지게 인식하고는 마치 그것이 전부인 양 착각하곤 한다. 그 사람이 나를 편하게 해준 것을 아는 때는 그 사람이 그 행동을 더 이상 하지 않을 때다. 없어봐야만 있었을 때가 얼마나 좋았던 것인지를 여실히 느끼게 된다. 그래서 밀당이 전략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밀당은 의도적인 부재로써 존재의 가치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무엇에든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다. 장점은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 때문에 잘 인식하지 않게 된다. 처음에 한두 번 고마워하다가 어느새 익숙해져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단점은 나를 불편하게 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상대방이 단점만 가진 것처럼 생각하게 되기 쉽다. 인간에게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보통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에서 단점을 보고,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서 장점을 본다. 지금의 상사에게서 단점을 보고 과거의 상사에게서 장점을 본다. 그러니 구관과 신관의 싸움에서 신관이 이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된다. 이러한 공정하지 않은 비교는 곳곳에서 일어난다. 내 배우자나 연인의 단점과 친구 배우자나 연인의 장점을 비교하는 식으로 말이다. 내 사람에게도 단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점도 있고 친구의 사람에게도 장점만 있는 게 아니라 단점도 있을 것이다. 친구는 내가 부러워하는 그 장점 대신 다른 단점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옆사람의 단점은 힘들어하면서 옆사람의 장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심리학에는 가용성편향(availability bias)이라는 용어가 있다. 익숙하고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쉽게 떠올려지지 않으면 마치 그것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면 이렇게 편향이 일어난다.
사태의 전모를 파악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없고 나서야 있음의 가치가 드러난다. 있을 때 있음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은 쉽지 않다. 뒤늦게 있음의 가치를 느끼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있을 때 ‘있어서 좋은 점’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진리다. 있음의 가치를 뒤늦게 인식하고서 후회를 한 사람들이 후세에게 전하는 경험칙이다. 있을 때는 있어서 힘든 점에 주목하다가 없고 나서야 있음의 가치를 알게 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뒷북 치지 말고, 있을 때 잘할 일이다.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