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미즈 선생과 번역 작업에 관한 긴 만남을 가졌다. 다섯 시간이 넘도록 이어진 그 자리는 회의라기보다 고백에 가까웠다. 선생은 주로 듣는 쪽이었고, 이상하게 나는 말을 하면서도 점점 침묵 쪽으로 가까워졌다. 시집을 낸 뒤에는 다시 펼쳐보는 일이 드물다. 행사를 계기로 시집을 다시 읽을 때면, 그 문장들이 정말 내가 쓴 것인지 낯설다. 마치 기억이 나를 배신하는 듯, ‘내가 정말 썼던 걸까’ 하는 거리감이 생긴다. 그 거리감은 시간의 간극이자 나와 글 사이에 놓인 미묘한 틈이다. 선생과의 대화는 바로 그 낯섦과 마주하는 시간이었고, 시집 속 시들을 하나하나 짚어갈 때면 그 감정이 더 선명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음 한편이 조용히 일렁였다. 기분이라기보다 고백이라는 행위가 주는 씁쓸함이었다. 시를 쓰고 나면 가끔 어딘가에 발가벗겨져 선 기분이 든다. 언어가 나를 감싸는 대신 벗겨내는 듯해서다. 시를 해석하며 읽는 일도 그렇다. 시에 깊이를 더하고 의미를 넓히는 작업이지만 때론 지나친 사유가 덧붙여지고, 원래 없던 무게가 붙기도 한다. 의미를 너무 단순화하거나 도식화하는 위험도 안고 있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쓴다.
결국 번역이란 어느 정도의 오독을 감수하며 시의 ‘결’을 지키려는 조심스럽고 불완전한 시도다. 시를 완전히 이해하기보다, 이해하려 애썼던 흔적이 오래도록 남을 때가 있다. 나는 그 경계에서 머뭇거린다. 시미즈 선생도 깊이 그 자리에서 고민하고 계실 거라 믿는다. 중요한 건, 우리가 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려 애썼는지를 묻는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서로 다른 언어로 어루만지는 태도. 그것이 번역의 시작이자 시를 대하는 가장 소박한 윤리일 터다. 완벽하지 않은 언어들 사이에서, 다시 한 번 귀 기울여 서로를 마주하는 순간에 시가 열린다. 그 순간은 말하지 못한 것들 사이에서 침묵처럼 피어난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