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지켜야 할 첫 번째 요건이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쩌면 이상한 원칙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반드시 그와 같은 원칙을 정할 필요가 있다.”
현대 간호학의 창시자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1863년 저서 ‘병원에 대한 소고’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크림전쟁 기간(1853~56) 오스만 제국의 스쿠타리 지역의 야전 병원에서 근무한 나이팅게일은 총에 맞아 죽는 병사보다 질병으로 죽는 군인이 최소 네 배 이상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심각한 위생 불량 상태로 인해 작은 상처에도 세균에 감염되거나 전염병이 돌아서 사망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나이팅게일의 눈에 병원은 환자에게 해를 끼치는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 환자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았다. 그가 도입한 위생 개념 덕분에 야전 병원의 사망률은 33%에서 2%로 뚝 떨어졌다.
병원은 최소한 해를 끼치는 곳이어서는 안된다는 나이팅게일의 주장이 오늘날 병원에서도 여전히 간과해선 안 될 중요 원칙이 돼야 한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30년 넘게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내과 의사이자 미국 뉴욕대 교수인 저자는 지난 세기 동안 무수한 의학적 진보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 실수(저자는 사고가 아닌 실수라고 표현한다)가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보다 훨씬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차분하게 제안한다.
저자는 많은 부분을 할애해 미국에서 발생한 전형적 의료 실수의 피해자 두 명의 사례를 파헤친다. 한 명은 미 해군 조종사 출신으로 은행 관리자로 일하는 제이. 39세로 건강했던 그는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다. 치료 과정에서 의료진의 실수와 부주의로 인해 패혈증에 걸려 사망했다. 현직 응급실 간호사인 아내가 곁을 지켰지만 의료진의 반복된 실수와 무관심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다른 한 명은 미국 중서부에 거주하는 60대 남성 글렌이다. 이웃집에서 발생한 화재로 2도 화상을 입고 입원하지만 제때 전문 화상 치료 센터로 이송하지 않은 의료진의 판단 미숙 등으로 며칠 만에 사망하고 만다. 글렌의 가족은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지만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저자는 두 사례를 통해 의료진 간의 의사소통 부족, 진단 지연, 전자의무기록(EMR)의 비효율성 등 병원 내 시스템 문제가 어떻게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지를 강조한다. 특히 의료 시스템의 투명성 부족과 책임 회피 문화가 유가족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지도 조명한다.
책의 도입부에는 2016년 국제학술지 영국의학저널(BMJ)에 실린 충격적 내용의 논문이 인용된다. 미국에서 의료 과실로 인한 사망자가 2013년 기준 25만명에 이르고, 이는 심장병과 암에 이어 세 번째 사망 원인이라는 내용이다. 저자는 실제 조사가 아닌 몇 건의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한 단순 예상치에 불과하다면서 부정확한 통계임을 강조하지만 병원 안전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는 점은 의미 있게 평가한다. 하지만 경각심의 방향에는 문제를 제기한다. 언론의 초점이 ‘사망자’에 맞춰지면서 환자의 사망으로 이어지지 않는 훨씬 많은 의료 실수에서 눈을 돌리게 만드는 부작용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사망에 이르지는 않지만 각종 합병증을 일으키거나, 피해를 유발하지 않는 실수도 잦다. 저자는 “언제든 광범위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사소한 실수라도 똑같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실수를 용기 있게 고백하기도 한다. 레지던트 시절, 응급실을 찾은 노인 환자를 요양병원으로 보내려고 했지만 다른 의사에 의해 뇌출혈이 발견돼 응급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또 자신이 꾸준히 진료하던 환자를 다른 의사에게 인계하고 안식년을 보내고 돌아온 뒤 그 환자가 다발 골수종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죄책감과 수치심 때문에 덮어버릴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자신의 과실을 드러내놓는 이유는 ‘의사도 인간이고 인간은 실수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문제 해결의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저자는 의료 실수가 완전히 근절될 수 없다는 의료계의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환자나 환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우리에게 혹시나 모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현실적인 조언을 빼놓지 않는 이유다. 자신의 병력(病歷)과 복용 약물, 수술 이력 등이 적힌 목록을 준비하는 것이 일순위다. 그리고 의사의 진단에 설명을 요구하고 다른 병일 가능성은 없는지 등도 꼼꼼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 특히 모든 의료진이 자신을 만지기 전에 손을 씻는지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저자는 환자가 “무조건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기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2500년 전 히포크라테스의 조언을 인용하면서 책을 끝맺는다. “질병을 대할 때는 두 가지를 명심하라. 도움을 주거나 적어도 해를 끼치지 말라.” 나이팅게일의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역사는 실수와의 싸움이다.
⊙ 세·줄·평 ★ ★ ★
·의사도 실수한다
·능동적인 환자가 돼야 의료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의료 실수를 줄이기 위한 눈물겨운 의료계의 역사도 살필 수 있다
·의사도 실수한다
·능동적인 환자가 돼야 의료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의료 실수를 줄이기 위한 눈물겨운 의료계의 역사도 살필 수 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