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25억명 넘는 사람이 찾는 유튜브엔 매일 수많은 채널이 만들어집니다.
많은 한국인은 오늘도 유튜브에 접속해 정보를 얻고 음악을 듣고 뉴스를 보고 위안을 받습니다. '유튜버'와 '인터뷰'의 첫 자음을 딴 'ㅇㅌㅂ'은 이렇듯 많은 이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튜버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많은 한국인은 오늘도 유튜브에 접속해 정보를 얻고 음악을 듣고 뉴스를 보고 위안을 받습니다. '유튜버'와 '인터뷰'의 첫 자음을 딴 'ㅇㅌㅂ'은 이렇듯 많은 이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튜버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자취남’과 ‘유부남’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 정성권(37)씨는 한국에서 1인 가구를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일 것이다. 마케팅 대행사를 다니다 별생각 없이 올린 친구 집들이 영상이 대박을 터뜨려 전업 유튜버가 됐다. 자취남과 유부남 채널에서 공개하는 것은 1인 가구와 신혼부부의 주거 공간이지만 ‘룸메’(두 채널 구독자의 애칭)들은 그곳에서 그들의 삶을 본다. 집을 꾸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자취남과 유부남 채널을 찾았다가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또래들 이야기에 매료된 룸메가 벌써 113만명에 이른다.
1인 가구 콘텐츠의 시장 개척자로서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정씨는 지난해 8월 의외의 결정을 내렸다. 부동산 중개 법인을 설립한 것이다. 이미 100만 유튜버 반열에 들어선 그는 왜 부동산 중개업에 뛰어들었을까.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 관악구에 있는 중개 사무실을 찾아 그를 만났다.
“허위 매물 때문에 고생한 적 있나요?”
“돈을 더 벌고 싶나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정씨는 웃으면서 이렇게 답했다. “돈을 벌고자 했다면 부동산 중개 법인 안 차렸을 겁니다. 다른 쉬운 길이 많아요.”
그러면서 정씨는 “이사할 때 허위 매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가 자취남 채널을 운영하며 만난 수많은 1인 가구는 이사 스트레스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집 보러 갈 때 얕보이지 않는 방법을 묻는 룸메도 많았다. 원룸 투룸 중개 시장에 만연한 허위 매물과 불친절한 중개사, 보조원의 불법 중개 행위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오랜 기간 부모님 집에서 살아온 그에게는 낯선 현실이었다.
룸메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던 정씨는 결국 부동산 중개 시장에 직접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그가 만든 중개 법인의 원칙은 간단하다. “이사를 행복한 경험으로 만들자.”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 명함에는 ‘No stress, only sullem(설렘)’이라는 문구를 적어넣었다. 함께 일할 공인중개사를 모집하는 공고에는 허위 매물로 영업하지 않아도 된다고 썼다. 대신 고객을 위해 할 일이 많다는 전제를 달았다. 정씨와 일하는 공인 중개사는 집을 본 뒤 직접 찍은 사진과 꼭 챙겨야 할 것들을 체크리스트로 만들어 고객에게 보낸다. 계약서를 쓰는 날에는 직접 쓴 손편지와 선물을 전달한다. 수수료를 신용 카드로 받는 것도 고객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조치다.
정씨는 좋은 집을 정직하게 연결하겠다는 목표로 중개 법인을 운영한다.
“룸메들이 좋은 집이 싸게 나왔다면 99%는 허위 매물이라고 말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시장에 직접 뛰어들어 바꿔야 이들의 권리를 지킬 수 있겠다고 판단했어요. 대신 마케팅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허위 매물 없는 부동산’이라는 홍보도 안 해요. 정도의 길을 가면 알아줄 거라고 믿으니까요.”
백미밥 같은 콘텐츠를 위해
정씨의 이런 철학은 콘텐츠 제작 방식에서도 묻어난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백미밥 같은 콘텐츠다. 그가 자취남과 유부남 채널의 동영상에서 자신을 ‘클린(clean)하고 퓨어(pure)한 유튜버’라고 소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일시적으로 관심을 끌 수는 있지만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콘텐츠 제작 철칙은 ‘출연자를 소비하지 않는다’다. 동영상 편집을 마친 뒤 두 번 세 번 돌려보며 조금이라도 논란이 될 부분은 전부 삭제한다. 섬네일 문구는 출연자의 발언에서만 따온다.
이렇게 완성한 동영상은 업로드하기 전에 출연자에게 미리 보낸다. 지금 자취남 유부남 채널에 올라가 있는 동영상은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다.
“다이어트 열풍이 불면 흑미밥, 발아 현미밥이 잠깐 유행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결국 오래 먹는 건 백미밥입니다. 본질을 지키고 싶어요.”
이런 가치관은 저서 ‘자취의 맛’ 발간과 ‘자취백과사전’ 제작 등 정씨가 해온 프로젝트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룸메 10명에게 1인당 1000만원씩, 총 1억원의 월세를 지원하기 위해 자취의 맛을 2022년 펴냈다. 전세자금대출을 받는 법과 보증보험에 가입하는 법, 임대차 계약서 쓰는 법 등 이사를 준비할 때 꼭 알아둬야 할 정보를 모은 자취백과사전 PDF 파일을 2023년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자선 사업가로 포장하지는 않지만 자취남이라는 브랜드가 사회적 자산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유튜버와 부동산 중개 법인을 통해 작게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착하게 살면 언젠가는 보답받는다고 믿어요. 기부도 조금씩 하고 있지만 제가 더 잘 할 수 있는 것은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 나누는 것 아닐까요.”
“집은 인생의 순간을 담는 그릇”
2023년 결혼한 정씨는 현재 경기도 일산의 신혼집과 서울 여의도의 ‘사무집’(사무실 겸 집)을 오가며 주말 부부로 산다. 주말의 일산은 몹시 평화롭지만 평일의 여의도는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하다. 대비되는 두 공간을 오가는 것은 일과 삶의 균형을 잡으려는 그의 노력의 일환이다.
체력의 한계를 느낄 때도 많다. 20분 넘는 영상 여섯 편을 매주 올리는 스케줄은 그야말로 살인적이다. 완급 조절을 하라는 주변의 조언에도 그는 이 주기를 지킨다.
“일주일에 동영상을 여섯 개 올리는 건 제 정신 건강을 위해서예요. 자기 집을 찍어달라는 룸메의 이메일을 한 달에 수십 건 받아요. 출연자를 고를 때 동선은 고려하지만 내용을 따지지는 않습니다. 일주일에 여섯 개를 올리면 그중 두세 개가 심심해서 조회 수가 낮을 게 뻔해도 그냥 올릴 수 있어요. 하지만 일주일에 한두 개 올렸는데 조회 수가 안 나온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겁니다.”
정씨는 룸메를 만날 때마다 자신의 세계가 깨지는 경험을 한다고 했다. 보통 처음 보는 사람과 두세 시간 얘기를 나누는 일이 흔치는 않다. 그는 이런 일을 매일 반복하며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간접 체험한다. 가장 큰 수확은 행복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이다.
“저는 과거 부모님 집을 나와 셋집에 살 때 집을 꾸미는 걸 이해 못했어요. 그런데 유튜버를 하다 보니 잘 꾸미고 사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이런 동영상을 올리면 아직도 ‘남의 집을 뭐하러 내 돈 들여 꾸미냐’는 악플이 달립니다. 이런 생각은 그 집을 ‘거쳐가는 곳’으로만 보기 때문에 생기는 것 같아요. 지금 빌라 살면 아파트 가야지, 경기도 살면 서울 가야지,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끝이 없어요. 그런데 인생은 순간의 모음이잖아요. 지금 셋집에 산다고 그 공간에서 행복하지 못할 이유는 없어요. 집은 인생을 이루는 순간들을 담는 그릇이에요. 어떤 집이든 행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