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방위산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동안 확보한 자동차 생산 기술력을 군용트럭이나 드론 등 ‘방산 모빌리티’에 적용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다. 내수 침체가 깊어지는 상황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던진 관세 폭탄으로 수출마저 둔화하자 사업 다각화로 활로를 모색하는 모습이다.
11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프랑스 자동차 제조업체 르노는 프랑스 국방부로부터 드론(무인기)을 제작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드론(무인기)을 생산해 우크라이나군에 제공하는 사업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검토 중이다. 르노 대변인은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국방부의 추가 설명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제안을 수락하면 중소 방산업체와 협력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떨어진 곳에 생산거점을 마련하고 드론을 생산하게 된다.
글로벌 2위 완성차업체인 폭스바겐그룹도 방산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현지 언론에 “기본적으로 방산 진출에 대한 논의가 열려 있다”고 말했다. 실적 악화로 폐쇄하기로 한 공장 두세 곳을 방산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뜻도 내비쳤다.
완성차업체들이 방산을 노리는 건 유럽연합(EU)의 군비 증강 기조와 연관돼 있다. EU는 지난 3월 8000억 유로 규모의 유럽 재무장 계획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무역 갈등, 완성차 수요 감소 등으로 위기에 빠진 완성차업계가 정부 주도의 방산을 통해 수익성 확보를 노리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완성차업체들은 과거에도 방위산업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르노는 제1차 세계대전 때 탱크, 항공기 엔진, 포탄 등 군수용품을 프랑스군에 납품했다. 폭스바겐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용차, 순항미사일, 대전차 로켓포, 지뢰 등을 생산했다.
기아도 최근 차세대 군용 차량인 중형표준차 양산을 시작했다. 1977년 이후 48년 만에 선보이는 모델이다. 2.5t과 5t 두 가지 모델로 출시한다. 280마력과 330마력 디젤 엔진에 8단 자동 변속기를 적용했다. 수심 1m의 하천을 건널 수 있다. 기아는 육군에 중형표준차를 인도하고 해외에도 수출할 방침이다. 기아 관계자는 “기아 군용 차량은 험지 주행 성능과 내구성을 인정받아 글로벌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앞으로도 혁신 기술을 적용해 군의 안전한 이동을 돕는 특수차량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기아는 73년 방위산업체로 지정된 이후 50년 넘게 한국 군용 차량의 개발과 생산을 했다. 85년 국내 유일 특수차량 전문 연구소를 설립했고, 전용 생산 설비 체계도 갖추고 있다. 97년 신형 지프 K-131, 2001년 15t급 중장비 수송 트랙터, 2017년 국내 최초 다목적 전술 차량인 소형전술차를 만들어 납품하기도 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