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낮 12시 경기도 성남 네이버 제2사옥. “넌 혼자가 아니야”라는 가사의 윤도현밴드 ‘흰수염 고래’ 노래가 흘러나오자 1층 로비에 모인 민주노총 산하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화섬식품노조) 소속 네이버·카카오 지회 노조원들이 묵상을 시작했다. 이들은 2021년 네이버에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직원을 추모했다.
네이버 노조는 이번 집회 슬로건을 ‘불통, 침묵, 퇴행을 거부한다’로 내걸었다. 당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사임했던 최인혁 전 최고운영책임자(COO)를 테크비즈니스 부문 대표로 복귀시키기로 한 경영진의 결정을 비판하는 취지다. 100여명의 노조원들은 최 전 COO를 향해 “책임을 외면한 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복귀 철회를 촉구했다.
상대적으로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판교 정보기술(IT) 노조 사이에서 강경 투쟁 기조가 확산하고 있다. 이달에만 카카오모빌리티와 넥슨 자회사인 네오플, 한글과컴퓨터 3개 회사가 사측과의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에서 합의를 보지 못하자 파업을 결정했다. 세 회사 모두 창립 이래 첫 파업이다. 국내 IT 업계에서도 ‘노조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세 회사 중 가장 먼저 파업 돌입 결정을 한 카카오 노조는 카카오모빌리티의 임단협 결렬에 따라 이날 낮 12시부터 2시간 동안 부분파업을 벌였다. 이번 파업은 오는 18일 4시간 부분파업과 집회, 25일 하루 전면파업까지 예고한 상태다.
카카오 노조는 카카오모빌리티 사측이 제시한 보상안이 실적 개선에 기여한 직원들의 헌신을 인정하지 않는 일방적이고 낮은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카카오모빌리티의 영업이익은 930억원으로 2023년(387억원) 대비 140% 증가했다. 노조 관계자는 “성과에 따른 보상 분배 기준이 불분명하고 보상 비율이 경영진과 일반 직원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IT 업계 노조 간의 공동 행동도 강화되는 추세다. 최근 네이버와 연대 노조를 결성한 카카오 노조는 이날 네이버 집회에 참석했다. 앞서 네이버 노조는 지난 3월 카카오의 포털인 다음 분사에 반대하는 카카오 노조 집회에 참석했다.
이 같은 기류는 IT 업계 노조가 조직력과 협상력을 키우는 전환기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IT 업계의 실적 부진과 비용 절감 기조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IT 업계에서 노조가 처음 탄생한 건 2018년 4월 네이버 노조의 공동성명이 시작일 만큼 역사가 짧다. 그동안 IT 업계 노조들은 쟁의 활동에 대한 방향성을 잡지 못했지만 최근 본격적으로 위력 행사에 나서기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네카오 노조 가입률이 50%를 넘어 과반 노조 지위를 확보하는 등 협상력이 달라졌다”며 “기업 경영 활동에 미치는 파급 효과도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고 말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