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당국이 한국산 철강 4만t 수입분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개시했다. 영국 철강업계가 한국산 후판 수입량 급증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호소하자 대처에 나선 것이다. 최근 미국발 철강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공급 과잉 우려 등이 겹치면서 각국의 철강 무역 장벽도 갈수록 높아지는 양상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영국 무역구제청(TRA)은 지난 6일 한국산 열간압연 후판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 대상은 폭 600㎜ 이상, 두께 4.75㎜를 초과하는 후판 제품으로 주로 기계 제조, 건설, 조선 등에 활용되는 품목이다. TRA는 지난해 4월 1일부터 지난 3월 31일까지 수입된 한국산 후판에 대해 반덤핑 여부를 조사할 예정이다. 조사 결과는 내년 1월 잠정 판정을 거쳐 같은 해 8월 최종 권고안으로 확정된다. 관련 제품을 영국에 수출하는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이 조사의 영향권에 든다.
이번 반덤핑 제소는 영국 철강업체 스파르탄UK가 주도했다. 이 업체는 영국 내 유일한 후판 생산업체다. 스파르탄UK는 “한국산 후판이 영국 시장에 정상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수입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수익성 악화, 시장 점유율 감소, 생산량 및 설비 가동률 감소 등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TRA에 따르면 영국의 한국산 후판 수입량은 2021년 약 1만4000t에서 지난해 4만t으로 3년 만에 186%가량 증가했다. 국내 철강 업계는 초기 대응에 분주하다. 한국철강협회는 오는 23일까지 TRA의 조사에 참여하기 위한 등록 절차 준비에 돌입했다. 협회 관계자는 “회원사 의견을 취합하고 관련 모니터링을 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각국의 철강 무역 장벽이 연달아 높아지는 추세다. 미국의 철강 수입 관세 50% 부과에 따라 미국 시장에서 밀려날 처지가 된 제품들이 저가로 세계 시장에 쏟아질 가능성이 커지자, 이를 막기 위한 각국의 조처도 활발한 것이다.
유럽연합(EU)은 앞서 지난 4월부터 한국산 철강에 대한 수입 쿼터를 축소했다. EU는 미국이 지난 2월부터 철강·알루미늄 무관세 규정을 없앤 점, 터키·콜롬비아·캐나다 등이 철강 제품에 대한 관세를 올린 점 등이 이같은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입장이다. 베트남 정부도 지난 4월 한국산 아연도금강판 제품에 최대 15.67%의 반덤핑 관세를 임시 부과했다. 한 대형 철강사 관계자는 “최근 미국발 국제통상 이슈로 다른 국가들에서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무역구제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