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뮤덕’(뮤지컬 덕후)인 김모(27)씨는 최근 코인노래방에 들렀다가 노래 검색에만 한참을 허비했다. 좋아하는 뮤지컬 노래는 끝내 검색되지 않았다. 검색 목록에는 있지만 ‘저작권 문제로 재생이 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뜨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김씨는 뮤지컬 ‘지킬 앤드 하이드’의 ‘대결’ 등 그나마 등록된 일부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국내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공연계 최고 권위인 ‘토니상’ 6관왕을 석권하면서 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저작권 문제 등으로 뮤지컬에서 나온 노래를 노래방에서 부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달 말 기준 노래방에 등록된 뮤지컬 노래는 180여곡에 불과했다. 연간 국내에서 공연되는 뮤지컬이 300여편, 뮤지컬 작품당 25곡 정도 노래들이 있다고 보면 노래방에 등록된 뮤지컬 노래는 전체의 3%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종규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은 11일 “3만명 이상 관람한 유명 작품 200편의 노래들만 뽑아도 5000곡에 달한다”고 말했다.
뮤지컬 노래를 노래방에서도 접하게 해달라는 요청은 팬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해결이 쉽지 않다. 뮤지컬 노래는 노래방에서 반주로 쓸 음원 제작부터가 난관이다. 작곡자는 물론 편곡자, 오케스트라, 배우 등 관련자 모두의 동의와 협조가 있어야 별도 음원 제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 큰 걸림돌은 저작권 문제다. 뮤지컬 노래는 제작사, 배우 소속사, 작곡자 등 이해관계가 얽혀 저작권 수입을 분배하는 계약이 복잡하게 이뤄져 있다. 게다가 국내 뮤지컬계는 하나의 역할을 2명 이상의 주연 배우들이 돌아가면서 공연하는 더블 캐스팅 형식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어떤 배우 이름으로 저작권을 등록할지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공연계 한 관계자는 “귀찮은 과정을 굳이 감수해가며 음원을 별도로 출시하려는 제작사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저작권 문제를 풀었다 해도 바로 노래방에 등록되지는 않는다. TJ미디어와 금영엔터테인먼트 등 노래방 업체는 자체 심사를 통해 시장성 있는 일부 음원만 노래방에 등록한다. 업계 관계자는 “노래방 업체가 선정하지 않은 특정 음원을 별도로 등록하려면 500만원대 추가 비용 부담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공연계에서는 시민들이 접근하기 쉬운 노래방에 유명 뮤지컬 노래가 많이 풀리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이사장은 “토니상 수상을 발판삼아 K뮤지컬 콘텐츠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선 국내 팬들부터 편하게 뮤지컬 노래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뮤지컬협회는 이번 대선 기간 뮤지컬 산업 진흥에 관한 내용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측에 제안해 이를 추진한다는 협약을 맺었다. 이 이사장은 “뮤지컬 시장 규모는 5000억원대인데 정부 지원은 100억원대에 불과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웅희 기자 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