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커뮤니티도 우려가 클 것이다. 이민 신분이 불안정한 사람도 있고, 영주권을 가지고 합법적으로 체류 중인 한인도 있다. 이들은 매년 한 번 이민국 사무소에 출석해 보고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법을 따르고 지시받은 대로 행동한 사람조차도 이민국에 출석했다가 체포될 수 있다.”
10일(현지시간) 화상으로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인단체들의 이민 단속 관련 대책 간담회에 캐런 배스 LA 시장이 직접 나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단속을 비판했다. 민주당 소속인 배스 시장은 “다른 시장들과 통화했는데 다들 ‘이 행정부가 우리에게도 저런 일을 할 것인가’ 하고 걱정했다”며 “나는 지금 우리 도시가 실험 대상으로 쓰이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LA한인회와 LA총영사관 등이 참여한 화상회의는 한인사회가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단속 및 관련 시위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한인은 최근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체포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한인이 가장 많은 LA 특성상 이민 단속이 강화되면 누구든지 체포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총영사관 관계자는 회의에서 “ICE가 30일간 LA지역 단속을 이어갈 것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퍼져 있다”며 “그럴 경우 코리아타운에서도 단속을 벌이고 그러면 시위대가 몰려올 수 있다. 그런 상황을 틈타서 약탈이 발생하기 때문에 동포사회가 또 피해를 보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티브 강 LA한인회 이사장은 이날 국민일보 등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단속이 확대되면 한인들도 표적이 될 우려가 크다”며 “범죄자와 단순 서류 미비자를 가리지 않는 이민 단속이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지적했다. 강 이사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가 1992년 LA 폭동 당시 한인 자경단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것과 관련해 “1992년 폭동 때도 한인사회가 흑인 커뮤니티와 경찰 간 갈등의 중간에 껴서 희생양이 됐다”며 “이번에도 그런 포스팅으로 한인사회가 또 희생양이 될까봐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고 말했다.
코리아타운은 이민 단속 반대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다운타운과 차로 20분 정도 떨어져 있어 아직은 군병력까지 투입된 시위 사태의 여진을 체감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경제적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이미 나오고 있다. 코리아타운에서 30년째 식당을 운영 중인 김용호 한인회 수석부회장은 “시위 내용이 보도되면서 손님이 줄어 저녁에 일찍 문을 닫았다”며 “식당과 세탁소 등 소규모 사업장은 이민 단속이 계속되면 큰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식당에서 설거지하는 직원은 서류 미비자들이 60~70%를 차지하는데, 단속이 계속되면 이 사람들은 더 이상 출근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한인이 운영하는 의류업체가 밀집한 ‘패션 디스트릭트’에선 지난 6일 ICE의 불시 단속으로 직원 10여명이 체포된 뒤 여러 업체에서 직원들이 안 나오고 일부 점포는 문을 닫았다.
다운타운에선 이날 밤까지 닷새째 산발적으로 시위가 이어졌다. 시 당국이 야간 소요사태를 막기 위해 도심 일부 지역에 야간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일부 시위대는 통금 이후에도 시위를 이어가다 경찰에 연행됐다.
시위는 LA를 넘어서서 샌프란시스코, 동부 뉴욕 등 10여개 대도시로 확산됐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강경대응 기조를 재확인했다. 그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육군기지 연설에서 “우리는 미국의 도시가 외국의 적에 침공당하고 정복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