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대선은 애초 싱거운 결말이 예상됐다. 구도 자체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에 대한 심판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국민의힘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길 수 없는 선거였다. 관심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50%의 득표율을 넘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얻었던 51.6% 기록을 깨느냐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어느 정도 선전을 해주느냐였다. 이재명 후보는 무난히 당선됐지만 박 전 대통령의 기록은 넘지 못했다. 유리한 구도에도 불구하고 역시 ‘반이재명’ 정서가 컸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이준석 후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1~2%에 불과했던 지지율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8.34%를 얻은 만큼 나름 선전했다는 평가가 있지만 선거비 보전의 첫 관문인 10% 득표에 실패하면서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더 큰 것 같다. 특히 진보 진영의 조롱과 비아냥이 넘쳐난다.
그동안 정치인 이준석의 비호감도를 높여 온 여러 비판이 있었다. 그와 그의 지지층에서는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반박했다. 그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만 없다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점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싸가지론’이다. ‘싸가지 없다’는 말은 나이 많은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그에게 싸가지 운운하는 평가의 근저에는 ‘어린 놈’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준석 후보는 정치권의 위계질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논리’로 제압하려는 특성이 있다. 오랫동안 그를 곁에서 봐왔던 김철근 개혁신당 사무총장은 “누가 됐든 나이, 경륜, 경험을 앞세워 찍어누르면 단 한 마디도 안 진다”면서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할 자리에 나이가 많고 적음이 뭐가 중요하냐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예의 없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지만 그가 선택한 논쟁적이지만 솔직한 언어는 권위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신선한 충격이자 필요한 도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 2030세대들이 그를 지지하는 이유의 상당 부분은 ‘싸가지’ 때문 아닌가. 그가 좋아하는 논쟁과 논리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시위와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시위에 대한 비판 과정에서 보듯 때론 ‘혐오’와 ‘갈라치기’라는 낙인으로 연결된다. 여성 혐오와 장애인 혐오가 아닌 ‘반문명’에 대한 문제 제기라는 그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그래도 그가 늘 주장하듯 직접적인 혐오 표현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혐오 분위기를 조장했다는 비판에는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대선 3차 TV토론에서 나온 이준석 후보의 ‘젓가락’ 발언은 그의 한계가 종합적으로 부각된 것이다. 정치를 게임하듯 한다는 비판을 듣는 그는 아마 대선 막판에 ‘승부수’라고 생각했을 거 같다. 2021년 국민의힘 당대표가 되거나 지난해 총선에서 예상과 달리 의원 배지를 다는 등 그의 승부수가 성공하기도 했다. 국어사전에 나오는 말을 연결해서 사용했을 뿐이라는 억울함도 있을 수 있다. 뒤늦게 문제가 커지자 애매한 사과를 했지만 그의 기본적인 태도는 ‘나의 논리가 잘못된 게 무엇이냐’였다. 그는 항상 ‘당신은 틀렸고 나는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든다. 많은 사람에게 그는, 자신이 틀렸을 때도 틀렸다는 말을 좀처럼 하지 않는 정치인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았다. 문제는 그의 논리가 2030 남성에게는 통할 수 있지만 보편적 국민의 상식에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에게 기대하는 것은 오랜 기간 정치적 앙숙이었던 안철수 의원과 화해 과정에서 한 “전적으로 제 잘못인 것 같다”는 말이다.
아마 이준석 후보와 개혁신당은 이번 대선의 경험을 냉철하게 되돌아보고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비판에 한마디 보탠 것은, 누가 뭐래도 그가 쉽게 만들 수 없고, 그래서 흔치 않은 ‘미래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맹경환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