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찾아가는 충남 태안 바다… 소원 빌면 이뤄주는 구멍바위 속 붉은 태양

입력 2025-06-12 02:10
충남 서해안 반도 태안군 구멍바위 사이로 해가 지고 있다. 구멍 사이로 보이는 굴뚝과 건물은 태안발전본부다. 이런 멋진 장면은 6월에 볼 수 있다.

충남 태안은 서해안에 있는 대표적인 반도 지형이다. 그 태안반도 북쪽 끝에 또 다른 반도를 갖춘 곳이 이원반도다. 태안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툭 튀어나온 모양을 한 지형이다. 태안의 ‘땅끝마을’로 불리기도 한다. 1990년 쏘아 올린 허블망원경이 보내온 사진 ‘창조의 기둥’으로 명명된 우주와 닮았다.

가로림만의 서쪽 축을 이루는 이원반도는 길이 20㎞, 최소 폭 500m의 가늘고 긴 모습이다. 가로림만은 전국 최대의 갯벌을 품고 있으며 이원반도와 서산 대산반도 사이에 호리병 모양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태안 해변에서 보는 명소.

이원반도는 면 소재지에서 반도 끝까지 직선거리로 약 12㎞, 차를 몰면 반도 끝 포구인 만대항까지 약 15㎞다. 큰길에서 좌우 샛길로 들어서면 흥미로운 볼거리가 기다린다. 반도 서쪽엔 멋진 바위해안과 아담한 모래해변을 거느린 울창한 소나무숲이 대세다. 동쪽엔 너른 갯벌과 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전들이 깔렸다. 굽이마다 솔숲 너머 아담한 포구·해수욕장이 즐비하다. 숨은포(음포)해변·피꾸지(피구지)해변·사목해변·꾸지나무해변·용난굴해변·중막골(죽마골)해변 등 아담하면서도 저마다 색다른 매력을 지닌 해변이 이어진다.

이원면 소재지인 포지리에서 603번 지방도를 타고 북으로 달리면서 구석구석 반도를 탐방해볼 만하다. 농촌체험마을로 이름난 ‘볏가리마을’ 인근에 소원을 빌며 통과하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구멍바위가 있다. 억겁의 세월이 만든 해식동굴이다. 간조에는 구멍이 드러나고 수위 높은 밀물 때에는 동굴이 잠기는 태안의 몇 안 되는 특별 풍경이다. 맑은 밤하늘 속 은하수도 감상할 수 있다. 구멍 사이로 보이는 굴뚝과 건물들은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다.

숨은 듯 고요한 태안 음포해변.

북쪽으로 조금 가면 ‘깊숙이 숨은 해안’이란 뜻을 지닌 숨은포(음포)다. 청일전쟁 때 해전에서 패해 조난한 청나라 군인들이 머물렀던 흔적이 전해 내려온다. 청나라 패잔병들이 머물던 막사 터, 샘터인 떼놈샘, 죽어 떠밀려온 군인들을 한데 묻었다는 떼놈총 등이 그것이다.

다음은 사목해변이다. 모래밭의 길이가 1㎞에 달하며 폭은 100m 정도이다. 솔숲동산이 해변 가운데 있고 그 양편으로 백사장이 뻗어 있다. 화려하진 않아도 인파에 시달리지 않고 조용히 해변 정경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전설을 품은 용난굴.

그 북쪽에 옛날 꾸지뽕나무가 많았다는 꾸지나무해변이 있다. 여름철 피서객이 많이 찾는 해수욕장이다. 내리 중막골 펜션단지 부근 바위해안엔 용이 나와 승천했다는 용난굴이 있다. 바다와 맞닿은 동굴은 입구 부분 높이 3m, 아랫부분의 폭 2m 정도 된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낮아지고 좁아진다. 18m쯤 들어가면 양쪽으로 두 개의 굴로 나뉜다.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오르기 위해 도를 닦았는데 오른쪽 용이 먼저 승천하니 왼쪽 용은 승천길이 막혀버렸다. 승천한 용은 굴 입구 위에 비늘 자국을 남겼고 갈 곳이 없는 용은 망부석이 돼 입구에 서 있다. 용난굴에 전해오는 전설이다. 인근에는 곰바위, 거북바위 등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가 자리 잡고 있어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용난굴 옆 해안 언덕에 오르면 북동쪽 소나무숲 사이로 썰물 때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여섬 풍경이 펼쳐진다.

반도 끝엔 만대포구가 있다. 옛날 읍내에서 이원반도로 가려면 하도 길이 험하고 멀어, ‘가다가다 만 데’라 해서 만대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포구다. 멀리 가로림만 너머로 황금산과 대산공업단지 굴뚝들이 아득하게 눈에 잡힌다.

바다를 끼고 있는데도 온통 ‘솔향기’다. 염전 이름도, 해안산책로 이름도 ‘솔향기’다. 야산 곳곳에 빽빽한 해송 숲 덕분이다. 주변 유명한 길은 ‘솔향기길’이다. 만대항은 솔향기길 제1코스(만대항~꾸지나무해변)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다.

솔향기길의 태동은 2007년 기름유출사고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름제거작업을 위해 이용하던 방제로와 군부대 순찰로, 임도, 오솔길들이 서로 연결돼 걷기 좋은 길로 만들어졌다. 천혜의 해안 경관을 감상하고 솔향과 바다내음, 파도소리를 들으며 탐방하는 길이다.

1코스는 울창한 소나무숲길과 바위해안길을 넘나드는 10.2㎞ 길이의 해안둘레길이다. 3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그 가운데 당봉전망대는 해발 61m밖에 되지 않으나 해안절벽 위에 있어서 고도감이 느껴지고 조망이 시원하다. 걷다가 멈추고 생각에 잠기면 혼자만의 정적이 마음을 위로한다.

여행메모
썰물에 만나는 용난굴 물때 알고 가야
시원·달콤 박속밀국낙지탕 태안 별미

용난굴은 썰물 때 만날 수 있다. 미리 물때를 보고 가야 된다. 국립해양조사원 홈페이지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일몰 때 동굴 안을 붉게 물들이며 떨어지는 낙조가 일품이다.

원북면 소재지와 만대항에 식당과 편의점이 있다. 노래미 우럭 등 활어회를 비교적 싼 값에 맛볼 수 있다. 만대항 식당들은 식사를 하는 솔향기길 여행자를 위해 꾸지나무해변에서 차로 데려오는 무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꾸지나무해변의 식당도 마찬가지다.

태안의 별미 박속밀국낙지탕.

이원반도로 들어가는 길목인 원북면 소재지에는 박속밀국낙지탕의 원조 식당이 유명하다. 박 속을 무처럼 반듯반듯하게 잘라 펄펄 끓인 다음 가로림만 개펄에서 잡은 싱싱한 세발낙지를 넣고 데쳐 먹는다. 밀칼국수나 수제비를 넣고 한번 더 끓이면 박의 시원함과 낙지의 달콤함이 칼국수와 수제비에 깊숙이 스며든다.

시간 여유가 된다면 국내에서 극히 드문 신두리해안사구를 함께 돌아보면 좋다.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바닷가 모래 언덕으로, 태안8경 중 하나이자 천연기념물이다. 여름이면 해당화, 갯메꽃 등 각종 갯벌식물이 만발한다. 신두리해안사구 남쪽 가까이에는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두웅습지가 있다.



태안=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