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무차별 LA 이민 단속…1992년 흑인 폭동 재현 막아야

입력 2025-06-12 01:20
사진=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초강경으로 밀어붙이는 불법 이민 단속이 로스앤젤레스(LA) 한인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이민 단속 표적이 한인 의류업체를 필두로 식당 세탁소 등으로 확대되고, 신분증 미소지자에 대한 무차별 체포가 일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장남 트럼프 주니어가 1992년 LA 흑인 폭동을 연상케 하는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것도 기름을 붓는 격이다. 흑인 커뮤니티와 경찰 간의 갈등에 휘말려 한인 상점이 무차별 약탈당했던 33년 전의 트라우마는 교민들의 뇌리에 아직도 생생하다. 또다시 한인사회를 희생양으로 삼는 폭동 재현이 우려된다는 점에서 매우 부적절한 처사다.

이번 단속이 심각성을 더하는 것은 범죄 이력이 있는 불법체류자뿐 아니라, 단순 서류 미비자 심지어 학생 비자나 시민권자 가족까지 검거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인 교포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LA 일대 식당·세탁소·의류업체 등에서 단속 강행이 집중되는 양상이어서 이들 사업장의 인력 공백은 생계 위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단속이 ‘법 집행’의 차원을 넘어 정치적 목적을 띠고, 특정 지역과 인종 커뮤니티를 자극하며 시행되고 있어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700명의 해병대원까지 파견한 트럼프 대통령이 “LA에 외적이 침입했다”고 엄포까지 놓고 캐런 배스 LA 시장조차 “우리 도시가 실험대상이 되고 있다”고 경고한 것은 사태가 더욱 확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단속 반대 시위가 갈수록 격화되고, 통행금지령이 내려질 정도로 사회적 갈등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LA 총영사관과 한인회 등이 ‘묵비권 행사 요령’이나 ‘헌법상 권리 안내 카드’ 등을 긴급 배포하고 나선 것은 그만큼 현지 사정이 절박하다는 방증이다.

정부와 재외공관은 이 같은 상황을 결코 방관해서는 안 된다. 1992년의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 무분별한 단속을 자제해줄 것을 요구해야 한다. 동시에 피해 최소화를 위한 대응 매뉴얼을 구체화하고, 한인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는 시스템도 구축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