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독립운동, 3대가 망한다더니

입력 2025-06-12 00:38

지난 9일자 국민일보 1면에는 ‘독립운동 헌신 우당 선생 종손자 가난한 노년’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만주 신흥무관학교 설립 주역인 우당 이회영 선생의 종손자 이종원씨가 경남 함양군 수동면 지리산 자락 끄트머리에서 가난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이씨는 우당의 바로 위 친형인 이철영 선생의 친손자다. 이철영 선생도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만주 신흥무관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물론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독립운동가다.

그런데 그런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자 명문가 후예지만 무학에 가까운 배움과 가난 속에 평생을 살아온 것으로 파악됐다. 이씨는 부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10대 중반에 금세공 기술을 배워 살았고, 이후 경비원 일을 오래 했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경비원 일도 할 수 없게 되자 처자식도 없어 피붙이 동생을 찾았다.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받은 혜택은 막내동생이 딱 한 번 학비를 면제받은 것과 우당이회영기념사업회가 보내준 쌀이 전부였다고 한다. 함양군과 경남도의 보훈부처는 이씨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이씨는 평소 “내 힘으로 살 수 있는데 국가의 도움 같은 건 바라지 않는다”며 자신과 집안 내력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독립운동가 후손은 이씨뿐이 아니다. 사단법인 따뜻한 하루에 따르면 유관순 열사 친조카인 유장부씨는 건물 청소 일을 하며 받는 월급 100만원으로 생계를 이어갔지만 고령 때문에 지금 그마저 못하고 있다. 유씨는 “독립운동을 하느라 집안이 풍비박산났다. 젊었을 때는 원망도 많이 했다. 독립운동은 조상이 다 했으니 나는 안 하겠다고도 생각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일왕에게 폭탄을 투척한 이봉창 의사 후손인 이세웅씨는 공방을 운영 중인데 한 달 70만원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고 한다.

독립운동가들은 ‘망국’이라는 지금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가족을 돌볼 여력도 없이 국권을 회복시키기 위해 온몸을 불살랐다. 물론 일제의 탄압도 가혹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고,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도 없었다. 친일파들이 ‘매국’으로 얻은 막대한 권력과 재물을 자손들에게 물려주고, 고등교육을 받아 부귀영화를 누린 것과 대조적이다.

실제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궁핍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통계에서도 나온다. 2015년 한 언론사가 독립운동가와 후손들 모임인 광복회 회원 6831명 전원을 대상으로 한국리서치와 함께 생활 실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의 75.2%가 월 개인 소득이 200만원 이하였다. 100만원 이상 200만원 미만이 43.0%로 가장 많았고 50만원 이상 100만원 미만이 20.9%, 심지어 50만원 미만도 10.3%나 됐다.

교육 기회 박탈도 실제 통계에서 입증됐다. 응답자 중 고졸이 25.7%로 가장 많았고 초졸(22.8%), 중졸(12.8%), 무학(4.7%)도 있었다. 우당 이회영 선생 종손자인 이씨도 초등학교만 나온 뒤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때마침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은 이제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보훈은 희생과 헌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이자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책임과 의무”라며 “모두를 위한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국권 회복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바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우리가 보듬는 것은 진정한 국가의 의무이자 국민의 의무다.

모규엽 사회2부장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