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어떤 우상의 실패

입력 2025-06-14 00:38

“엄청 싸네?” 아내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눈앞의 음식점 유리창에는 가격표가 음식 사진 위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으레 있는 할인 이벤트라고 하기엔 할인 폭이 크고 해당 메뉴도 많았다. 번화가인 인근 식당가를 걷다 보니 비슷한 가격표가 붙은 음식점과 카페가 몇몇 더 눈에 들어왔다.

500원짜리 커피와 2000원짜리 우동, 4500원짜리 파스타와 3900원짜리 짜장면까지. 사실 이곳의 공통점은 이상한 가격표 말고도 하나 더 있다. 요즘 기사에 유독 이름이 자주 오르는 외식사업가, 백종원의 ‘더본코리아’ 소속 프랜차이즈라는 점이다.

그가 출연한 ‘골목식당’의 오랜 팬이었다. 놓친 이전 영상을 찾으려고 한때 방송사 유료 회원권까지 결제했을 정도다. 이른바 ‘빌런’ 욕하려고 보는 거 아니냐는 비아냥도 받은 프로그램이지만 적어도 내겐 그렇지 않았다.

무엇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긴 세월 닦은 실력과 음식에 쏟아온 정성이 마침내 인정받는 순간을 보는 게 좋았다. 방송 내내 표정 변화 없이 음식만 묵묵히 만들던 주방 안주인이 ‘정말 맛있다’는 칭찬 하나에 울컥 눈물을 보일 때면 왠지 모르게 내 눈에도 찔끔 눈물이 났다.

제작진의 의도가 뭐였든지 간에, 결국 골목식당의 서사는 백종원이라는 인물 없이 성립하기 어려웠다. ‘마리텔’ ‘한식대첩’ 같은 이전 예능에서 그는 출연자 중 하나일 뿐이었지만 적어도 여기선 그가 절대자요,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숨은 고수를 찾아내는 일도 그랬지만 어떤 맛이 손님에게 인기를 얻을지, 사장님이 행동거지를 어떻게 고쳐야 성공할지 답을 내릴 수 있는 건 그뿐이었다.

‘식당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리고 싶다’는 게 그가 줄곧 내세운 목표였지만 역설적이게도 그의 존재 자체가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증명했다.

그는 사실 그즈음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한 환상이자 상징에 가까웠다. 전보다는 덜하다지만 한국은 여전히 자영업자가 전체 취업자의 5분의 1을 넘나드는 곳이다. 먹고살기 위해 자신의 노동을 한계 없이 갈아 넣는 사람이 이토록 넘쳐나는 사회에서 올바른 길만 걷는다면 정직한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란 무너져선 안 되는 버팀목이자 신앙이다.

그러나 너나 할 것 없이 일확천금의 기회를 찾아 헤매는 시대에 이런 믿음이 설 자리는 없다. 어쩌면 우리는 오랜 시간 지켜왔지만 무너져가는 이 믿음을 백종원이라는 기성세대 중년남성을 우상 삼아 되살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의 몰락은 그런 믿음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걸 오히려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폭로했다. 그 역시 꼼수와 편법으로 남의 눈을 속여 부당한 이득을 취했고, 오히려 방송으로 쌓은 이미지를 사업에 활용했을 뿐이라는 게 지금껏 쏟아진 의혹의 요지다. 경찰 조사가 계속되는 가운데 섣불리 잘못을 단정할 순 없지만 사실관계가 어떻게 확인되든지 그가 이미 우상의 자리에서 내려왔으며 다시 그곳에 올라설 수 없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한때 ‘요식업계의 왕’이라고까지 불리던 그는 이제 그 자리에 없다.

불행히도, 아니 어쩌면 다행히도 그가 상징했던 믿음은 애초에 백종원이라는 개인을 향한 게 아니다. 노력해서 성공할 수 있는 사회란 사실 자본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하는 사회, 즉 체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체제를 향한 믿음은 우리가 숙고와 합의로 사회의 구조를 바꿔내고 실천으로 함께 회복해야 할 종류의 것이지 어떤 우상을 내세운다고 해서 복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성실한 노력보다 요행과 투기가 각광받는 지금의 세상에서 그의 추락을 지켜보며 우리가 배신감보다는 교훈을 얻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 사회는 오랜 시간 그를 구원자로 대했다. 그가 망해가는 골목상권을, 외면당하는 전통시장을 부활시킬 걸 기대했다. 궁지에 몰린 농가에 한 줄기 빛이 되어 줄 걸로 믿었다. 그 모든 믿음이 헛되었다는 게 아니다.

아마도 그가 내놓은 해법과 행동 중엔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있을 테니 말이다. 되새겨야 할 것은 따로 있다. 그에게 기대한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건 결국 우리 자신이라는 점이다. 정직한 노동이 그만큼의 보상을 받는 세상, 성실한 약자들이 도태당하지 않고 기회를 얻는 세상을 만드는 건 백종원이라는 구원자가 아닌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조효석 영상센터 뉴미디어팀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