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하라 겸손하라 겸손하라

입력 2025-06-12 03:05
이탈리아 피렌체의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본 피렌체 시내의 일몰 모습으로 사진 오른쪽은 두오모성당, 중앙은 베키오궁. 황성주 회장 제공

짐 콜린스는 그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라는 책에서 좋은 기업이 어떻게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하는지에 대한 심층 연구를 실시했다. 그는 전 세계 1435개 기업 중 11개만이 ‘위대함’으로 도약했다고 분석하면서 그 공통된 핵심 요소를 도출해냈다.

그중 필자를 매료시킨 것은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개념이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 막연한 거짓 희망에 속지 말고 당면한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며 정면대결하되 그 과정에서도 절대 희망을 잃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 개념을 습득한 덕분에 필자는 2011년 한국 대표로 출전한 ‘고비사막 매치’, 죽음의 마라톤이라 불리는 어드벤처 레이스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다른 또 하나는 ‘레벨 5 리더십’이라는 것인데 당시에는 별로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그 개념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그 가치를 절감하고 있다. 레벨 5 리더십은 지극히 겸손하면서도 불굴의 의지를 가진 리더가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 조직의 성공을 위해 조용하면서 단호하게 헌신하는 것을 말한다. 그 핵심 중 하나는 성공의 공은 조직과 팀에 돌리고 실패의 책임은 스스로 진다는 겸손의 리더십이다. 이른바 창밖과 거울의 법칙인데 성공은 ‘창밖’(다른 사람) 덕분, 실패는 ‘거울’(자기 자신) 때문이라는 이론이다. 세계 역사에서 이 이론의 대표적인 모델로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코시모 데 메디치(1389~1464)를 들고 있다.

메디치 가문의 겸손과 은둔의 철학
지난 1일 이탈리아 피우지의 암바스키아토리 플레이스 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리더스 서밋에 전 세계 복음주의 리더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황성주 회장 제공

2주 전 영국 사역을 마치고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로마를 방문했다. 로마 근교 피우지에서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글로벌 2033 대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대회는 전 세계 복음주의 리더들이 로마가톨릭 내부에서 영혼 구원에 전력하는 전도자들을 돕기 위한 기도 모임이었다. 특히 빌리온 소울 하비스트(BSH) 비전은 이들에게도 큰 도전과 격려가 됐다. 공교롭게도 로마에 도착하기 사흘 전 유럽 재복음화를 위한 기도행전팀과 함께 피렌체에 들를 여유가 있었는데 이를 통해 몇 년간 진행하던 ‘홀리 르네상스’ 연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알려진 것처럼 피렌체 르네상스를 일으킨 가문은 메디치가이고 이를 주도한 인물은 ‘국부’로 불리는 코시모 데 메디치이다. 메디치가의 창시자인 그의 아버지 조반니 데 메디치는 13세기 후반, 피렌체 중심 시장인 메르카토 베키오에서 작은 환전소를 운영했다. 상점 하나에 테이블 한 개, 그리고 몇 개의 동전. 이것이 그들의 출발점이었다. 이 시기 피렌체 금융은 알비치 등 거대 가문들이 장악하고 있었고 메디치는 변방의 존재였다. 그는 단 한 번도 교만하지 않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처세로 귀족 사회의 견제를 피해 갔다. 그는 몸을 낮추고 신뢰를 쌓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아들 코시모에게 유언처럼 ‘겸손과 은둔의 철학’을 철저히 교육했다.

“유능함을 드러내지 말고 뒤로 숨어라. 온화하게 몸을 낮추며 조용히 처신해라. 부자와 강자를 거스르지 말면서 빈자와 약자에게 항상 자비로우라. 절대로 시민들의 기대에 반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면 거만한 지시가 아니라 정중한 반대 표시를 이용해 바로 잡아야 한다. 정치에는 너무 깊이 개입하지 말아라. 특히 공직을 맡는 일은 피하라. 위에서 오라고 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먼저 정치인에게 접근하지 말고 가더라도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고 허세를 부리지 마라.”

코시모는 결국 이 원리를 따랐을 뿐 아니라 겸손을 심화시키고 인격화시켜 메디치 가문이 거대한 르네상스 물결을 일으키고 세계 질서를 재편토록 했다. 그는 엄청난 부와 권력을 보유했지만 누구보다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자신을 낮추며 도시국가 피렌체를 실질적으로 통치했다. 시내 거리를 다닐 때 수수한 복장으로 시종 하나만 대동하면서 노인들에게 길을 양보하거나 행정장관들에게 극도의 예우를 갖췄다. 다른 부유한 가문의 자제들에게도 주인공 자리를 양보했다. 오직 겸손, 겸손, 겸손이었다.

15세기 피렌체의 국부로 불렸던 코시모 데 메디치와 메디치가 문장. 황성주 회장 제공

그는 대단히 사려 깊었다. 중후하고 예의 바르고 덕망이 넘치는 외모를 갖고 있었다. 초년은 고통과 유배와 신변 위협 속에서 지냈으나 지칠 줄 모르는 관용으로 모두를 포용하며 모든 재산을 쏟아 나눔을 실천해 큰 인기를 얻었다. 거부이면서도 검소하고 소탈했다. 코시모 데 메디치는 금융과 경영의 거물만이 아니었다. 철저한 겸손을 전략으로 피렌체를 이끌고 르네상스 문명을 꽃피운 숨은 군주였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거나 드러내는 대신 조용히 영향력을 행사하며 예술 학문 정치 경제 전반에 지대하게 기여했다.

그는 보복보다 관용으로 정적들을 품은 정치적 겸손, 개인적 부를 과시하기보다는 예술과 학문에 아낌없는 후원을 하는 문화적 겸손, 투명하고 신중한 태도로 투기 대신 장기적인 신용을 구축하는 경제적 겸손, 강압적 대외 외교보다는 유연하고 절제된 접근을 통한 외교적 겸손으로 초지일관했다. 그가 선택한 겸손의 길은 피렌체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메디치 가문의 장기적 존속을 가능케 했다. 오늘날 우리는 코시모를 통해 겸손은 약함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리더십의 형태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메디치가의 위대함은 신앙에서 비롯

르네상스를 꽃피운 메디치 가문이 위대한 이유는 단지 예술가를 후원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겸손한 기획자로서 철학자 과학자 신학자 상인 정치가 등 이질적인 사고와 배경을 지닌 이들의 다양성을 하나의 장에 모았기 때문이다. 결국 ‘차이’가 ‘창조’를 낳는다는 메디치 효과는 겸손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코시모 데 메디치는 15세기 피렌체를 중심으로 금융 정치 예술 철학을 융합한 탁월한 지도자였다.

하지만 그를 단순히 ‘르네상스의 설계자’로만 기억하는 것은 옳지 않다. 코시모의 삶 깊은 곳에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신앙은 그가 남긴 사회 문화 예술 철학의 업적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이다. 그는 경건한 신앙인으로서 수도사들의 청빈과 경건을 본받으려 애썼고 자신의 재력과 권력을 통해 교회와 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했다.

그는 수도사들의 연구와 학문 활동을 지원하고 피렌체의 가난한 이웃을 위해 병원과 고아원을 지원하면서 “내 믿음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쓰여야 한다”는 기독교적 소명을 실천으로 옮겼다. 코시모는 또 철학은 신앙을 돕는 도구라 생각했고 플라톤의 신플라톤주의가 기독교 신앙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여기서 우리는 코시모가 신앙을 단순히 교리로만 보지 않고 지성적 탐구와 융합할 수 있는 깊은 진리로 여기며 지성과 영성을 통합하는 시도를 했음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코시모의 인격과 삶은 다음 말씀을 확증하는 역할 모델인 셈이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 22:4)

탁월한 통찰력으로 이름난 역사학자 시오노 나나미는 르네상스를 설명하면서 기독교가 르네상스를 막았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밑바탕에 깔려 있던 토양’이라고 말했다. 그는 “르네상스는 단순히 고대 회귀가 아니라 기독교 세계가 중세의 금욕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과 세계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 결과”라고 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의 전환이 일어났지만 이는 하나님을 부정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가능성을 재발견한 것이라 했다.

그는 르네상스와 기독교의 관계는 단절이 아닌 연속이며 기독교적 세계관 안에서 인간 중심 사상을 꽃핀 것으로 “신을 버린 게 아니라 신과 함께 인간을 발견한 시대”라고 결론지었다. 이는 르네상스를 설계하고 실행한 코시모 데 메디치가 신앙적 겸손으로 무장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는 점과 더불어 르네상스에 대한 충격적인 재발견이요 재해석인 셈이다.

이 대통령이 메디치 철학을 가진다면

이제 대한민국은 ‘사람이 먼저’라는 철학을 가진 새로운 대통령을 맞게 되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강점은 강력한 추진력과 서민 중심 사고, 탁월한 대중 소통 능력과 정책 능력이다. 필자는 이러한 이 대통령의 강점에 코시모 데 메디치의 겸손한 처신과 리더십 철학이 결합된다면 단순히 추진력 있는 정치가를 넘어 오래 신뢰받는 통합형 국가 지도자로 발전할 수 있는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강한 추진력에 겸손한 절제를 더해 ‘조용한 설득자’로, 서민 중심 사고에 철저한 겸손을 더해 ‘진정성에 대한 신뢰 확대’로, 대중과의 소통 능력에 메디치식 은은한 영향력을 더해 ‘모두를 아우르는 통합 리더십’으로, 정책 능력에 메디치식 문화적 창의성을 더해 ‘한국식 르네상스의 설계자’로 자리매김하길 기도해 본다.

무엇보다 절박한 상황에서 성남주민교회 지하 기도실에서 기도하며 ‘정치를 하겠다’는 결단을 했던 첫 마음을 잃지 않길 간절히 기도한다. 끝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리더들에게 외치고 싶은 말이 있다. 겸손하라! 겸손하라! 겸손하라! 그 길만이 그대가 살고 공동체가 사는 길이다.

황성주 KWMA 회장·사랑의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