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재판이 잇달아 연기되며 사법 리스크가 사실상 해소되자 더불어민주당이 ‘방탄’ 중심에서 민생 중심으로 유턴하고 있다. 당장 ‘이재명 방탄법’으로 비판받았던 형사소송법 개정안 추진을 중단했고, 쟁점 법안을 강행 처리하는 대신 야당에 ‘민생 협치’를 제안했다. 속도 조절 이면에는 이 대통령의 여야 협치 의중과 더불어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 대신 민생 정당 입지를 굳히려는 의도가 놓인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앞선 9일 대통령실 등과의 교감 후 12일 본회의를 열어 쟁점 법안을 처리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기로 결론 내렸다.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0일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12일 본회의가 열리지 않고, 여러 법안도 이번 주에는 처리되지 않는다”며 “새 원내 지도부가 구성되면 바로 속도감 있게 법안 처리가 이뤄질 것이고, 그 이후 상황은 오롯이 새 원내지도부가 의원들과 함께 판단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당초 원내지도부는 12일 형사소송법·공직선거법 개정안 등을 강행 처리하려 했다. 둘 다 이 대통령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야당으로부터 ‘이재명 방탄법’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법안이다. 당내에서는 이 대통령 재판 취소로 정치적 부담을 덜었다며 강행 처리를 주장하는 의견과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최소화하자는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외에도 상법 개정안과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역시 12일 본회의 처리가 유력하게 검토됐지만 차기 원내지도부의 과제로 넘겨졌다.
동시에 민주당은 야당을 향해 ‘민생 공통공약 추진 협의회’ 재가동을 공식 제안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대통령선거 정책공약을 비교해 보니 양당의 공통공약만 200여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입법이 필요한 공약 사안은 80건 정도”라며 “여야의 새 원내대표가 선출되는 대로 민생 공통공약 추진 협의회부터 다시 가동할 것을 국민의힘에 제안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공통공약으로는 반도체 등 첨단 전략산업 지원, 인공지능(AI) 예산 증액, 농어업 재해 피해복구 범위 확대 등이 거론된다.
진 의장은 야당의 일부 공약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민주당보다 더 전향적인 공약들도 있다. 민주당 공약보다 더 나은 것이라고 솔직히 인정한다”며 “(야당 공약을) 적극 검토해서 반영할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임기 첫날부터 협치를 강조해 오고 있다. 지난 4일 국회에서 취임선서를 한 뒤 여야 대표들과 가진 비공개 오찬 회동에서 “대선 때 각 당과 후보들이 내놓은 공통공약부터 빠르게 합의하면서 진행하자”고 제안했었다. 민주당의 새 원내대표는 오는 13일 선출된다. 일단 12일 본회의는 취소됐지만 신임 원내지도부가 쟁점 법안 처리 속도를 높일 가능성은 남아 있다.
김판 김승연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