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무장 경찰·최루탄·헬기 소음… 공포의 ‘천사들 도시’

입력 2025-06-10 18:44 수정 2025-06-10 18:47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리틀도쿄 지역에서 9일 밤(현지시간) 시위대가 던진 폭죽이 사방으로 튀는 가운데 방탄복과 헬멧을 착용한 경찰들이 시위 진압에 나서고 있다. AFP연합뉴스

9일 밤 10시(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다운타운의 한 호텔 앞. 진압 장비로 중무장한 경찰이 도로 곳곳을 통제하면서 군사작전이 진행되는 듯한 삼엄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헬멧과 방독면, 소총으로 무장한 경찰이 거리 곳곳을 막아섰다. 낮은 고도로 날아다니는 헬기는 이곳저곳에 서치라이트를 비췄다. 일상적인 모습이던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LAX)에서 불과 30분 떨어진 이곳에서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중무장한 경찰들과 30m 정도 떨어진 곳에 집결한 시위대 중 한 명인 폴라는 ‘이민세관단속국(ICE)은 LA에서 나가라’는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멕시코계 부모를 둔 그는 “미국의 중추인 이민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나왔다”며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는 지금 우리나라를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다.

폴라는 특히 해병대 700명이 LA에 투입된다는 보도를 듣고 매우 놀랐다고 했다. 그는 “점점 위험해지는 것 같다. 해병대가 와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게 가장 두렵다”며 “해병대는 중동에서 전쟁을 치르는 데 익숙하지, 민간인과의 전쟁에는 익숙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흘째를 맞은 불법 이민 단속 반대 시위는 해가 지기 전까지는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진행됐다. 뉴욕타임스는 “경찰이 시내에서 일부 체포에 나섰지만 시위대가 101번 고속도로를 점거했던 8일에 비해 충돌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도심은 날이 저물자 긴장이 고조됐다.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시키려고 섬광탄과 고무탄을 발사했다. 시청과 리틀도쿄(일본계 미국인 커뮤니티) 인근에 밀집한 시위대는 마스크를 쓴 경찰과 대치하다 순찰차가 다가오면 이리저리 흩어졌다. 일부는 경찰을 향해 폭죽으로 추청되는 물체를 던졌다. 거리에선 공포탄과 최루탄 폭음, 순찰차 사이렌, 헬기 비행 소리가 이어져 대화를 나누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한국계 미국인인 새러는 경찰의 도로 통제 여파로 길을 헤매는 이들에게 먼저 말을 걸며 길을 안내했다. 그는 “이 주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을 돕고 모두가 안전한지 확인하기 위해 나왔다”며 “이민자들은 범죄자가 아니다. 더 나은 삶을 찾으려는 가족들이다. 트럼프는 범죄 혐의도 없이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쫓아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LA는 말 그대로 스페인어 ‘로스앤젤레스(천사들)’에서 따왔다. 이민자들이 세운 도시”라며 “멕시코와 한국 등에서 온 이민자들이 이 도시를 건설했다. 그래서 나는 트럼프가 잘못하고 있고 악한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찰이 도로를 통제하고 복면을 쓴 시위대가 뛰어다니면서 일반 시민들은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지난 6일부터 계속되는 시위와 트럼프 행정부의 초강경 대응으로 초여름의 활기가 돌아야 할 ‘천사들의 도시’는 공포에 잠식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