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칭송하지만 읽지 않는 책.’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고전’을 정의한 말이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잘 알려져 있으며 높은 수준에 영구적 가치를 지닌 글이나 음악, 영화’(영국 케임브리지 영어사전) 등 여러 사전이 명시한 기존 뜻을 살짝 비틀었다.
현재 우리 사회서 통용되는 고전의 의미는 트웨인과 두 어학사전의 정의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아무래도 전자가 아닐까 싶다. 일반화는 어렵지만 내가 속한 3040세대 가운데는 학창 시절 교사나 학교, 도서관이 제공하는 권장도서 목록으로 서양 고전을 처음 접한 경우가 꽤 됐다. 국내 고전, 특히 문학 작품은 국어 시험을 대비하다 익히는 경우도 적잖았다.
고전을 집어 들기 쉽지 않은 건 대학 진학 이후로도 마찬가지다.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때는 전공서 등 실용서에, 취업 이후엔 자기계발서를 펼치기 바쁘다. 지난해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문학 서적이 서울대 등 주요 대학 도서관 대출 상위권을 차지했다곤 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그 자리를 차지했던 건 전공 서적이었다. 재미 아닌 수단으로만 책을 바라보는 관점이 널리 퍼진 건 치열한 입시 경쟁과 장기 불황이 드리운 음영이 아닐까.
고전 독서의 어려움에 이런 외부적 요인만 있는 건 아니다. 고전은 그 자체로 읽기가 쉽지 않다. 현대 서적에 비해 내용은 물론이고 분량도 압도적이다. 이 때문에 초심자는 고전 대신 그 내용을 알기 쉽게 풀이한 해설서를 택하곤 한다.
반면 전문가들은 “고전 해설서보다 고전을 직접 읽는 게 대가의 사상을 더 쉽게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서 영문학을 강의한 영문학자이자 ‘나니아 연대기’ 작가인 C S 루이스는 저서 ‘피고석의 하나님’(홍성사)에서 대학가에서 목격한 기현상을 소개한다. 플라톤 철학을 연구한다던 철학과 학생이 원전이나 원전의 번역서 대신 해설서를 공부하는 모습이었다. 루이스의 말이다. “(해설서엔) 온통 무슨 무슨 주의와 그 사조가 끼친 영향을 기술한 내용일 뿐, 실제로 플라톤이 한 말은 가물에 콩 나듯 나온다. … 교수로서 각별히 후학에게 신신당부하는 말이 있다. 직접 지식이 간접 지식보다 습득 가치가 높을뿐더러 대개 습득하기도 훨씬 쉽고 즐겁다는 것이다.”
시대의 검증을 거쳐 지금껏 명맥을 유지한 고전은 수많은 인생의 생각과 삶을 바꿨다는 공통점이 있다. 개인의 변화는 세상을 뒤흔들고 변화를 끌어내는 원동력이 된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처럼 한 권의 책이 세계를 바꾼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것이 고전이 지닌 힘이다.
국민일보 ‘책과 영성’이 격주로 선보이는 기획 보도 ‘기독 고전 맛집’을 지난달부터 시작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기독교를 넘어 세계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원전을 읽으며 삶을 돌아보고, 고전 독서의 참맛도 느껴보자는 의도다. 연말까지 이어지는 기사의 목표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셰프가 메뉴를 설명하듯 상세하고 알기 쉽게 고전을 해설하는 것이다. 맛집에서 메뉴 설명만 듣는 이가 없듯 기사를 읽은 뒤 직접 고전을 읽으며 그 내용을 찬찬히 음미하는 이들이 늘길 기대한다.
기독 고전 맛집이 소개하는 책은 이번 기획을 함께하는 만나교회(김병삼 목사)의 설교 시리즈 ‘주말의 명작’ 고전 목록을 참고했다. 이 중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시작으로 총 16권의 고전을 기사로 소개한다. 민망스럽게도 기사를 준비하며 ‘어쩌다 고전 독서가’가 됐는데, 덕분에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독자 여러분도 기사를 읽으며 고전의 매력을 느끼고 ‘인생 책’도 만날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할 나위가 없겠다.
양민경 미션탐사부 차장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