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 노동자, 4년새 3명 사망
허영인 회장이 문제 해결해야
고 김용균 태안화력 또 사고
'위험의 외주화' 여전해
안전한 일터 만드는 게
이재명정부의 중요 책무
허영인 회장이 문제 해결해야
고 김용균 태안화력 또 사고
'위험의 외주화' 여전해
안전한 일터 만드는 게
이재명정부의 중요 책무
또 일터에서 노동자가 숨졌다. 빵을 만들다 기계에 끼었다. 그 빵은 ‘크보(KBO)빵’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SPC가 협업한 이 빵은 올 시즌 출시 41일 만에 1000만 봉지나 팔린 히트 상품이다. 하지만 이달 초 생산을 멈췄다. 한 노동자의 죽음 때문이다.
사고는 지난달 크보빵의 주 생산공장인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발생했다. 새벽 3시 윤활유 작업 중이던 50대 노동자가 설비에 끼어 숨졌다. 소비자들은 “노동자의 피 묻은 빵을 먹지 않겠다”며 불매운동에 나섰고, SPC는 생산을 중단했다. 파리바게뜨, 던킨, 배스킨라빈스 등 계열 브랜드 전체로 불매 여론이 번졌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에도 SPC 계열 공장에서 당시 23살이던 박선빈씨가 소스 배합 작업을 하다 기계에 끼어 숨졌다. 허영인 SPC 회장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중대재해 재발을 막겠다며 1000억원 규모의 안전투자를 약속했다. 그러나 그다음 해인 2023년에 또 노동자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졌다. 끼임을 감지하고 멈추는 안전센서도 설치되지 않았고 경보음도 울리지 않았다. 반복되는 사고에도 현장에선 기본적인 체계조차 잡혀 있지 않았다. 그리고 2025년 5월 또 희생자가 나왔다.
그럼에도 허 회장은 사망사고와 관련해 단 한 번도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회사는 소위 ‘바지사장’이라 불리는 안전 책임자를 따로 세워 법적 책임을 분산시켰다. 회사의 각성도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투자하겠다던 1000억원은 도대체 어디에 쓴 것일까. 왜 유독 이 회사에서만 끼임 사고가 많을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불매운동 벌이던 사람들도 다 잊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번 사고 이후 본사를 압수수색하려는 수사당국의 영장 청구는 세 차례 모두 기각됐다. 반복된 사고였고 사고 설비를 철거했다는 정황도 있었지만 ‘필요성 부족’이라는 이유였다. 수사는 더디고 기업의 안전경영 약속은 공허하기만 하다.
이는 SPC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달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외주업체 노동자 김충현씨가 혼자 작업을 하다 숨졌다. 2018년 당시 24세로 입사 3개월 차이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사망했던 같은 시설이다. 기업이 위험성이 높은 업무를 하청업체나 계약직, 파견노동자에게 맡김으로써 자신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위험의 외주화’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이를 계기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고, 이를 보완해 사고 발생 시 CEO를 형사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태안화력 현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김씨는 혼자였다. 작업대에는 비상 정지 버튼이 있어 옆에 동료만 있었어도 큰 사고를 면할 수 있었지만 2인 1조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너무 자주 일터에서 소중한 목숨을 잃는다. 반복되는 사고에 우리 스스로 둔감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돌이켜보면 세월호도 이태원도 오송지하차도도 그랬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모두 위험 신호가 있었다. 경고가 있었지만 무시됐다. 그리고 참사로 이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틀 만에 안전치안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막을 수 있었던 사고가 발생한 경우 엄정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마땅한 일이다. 중요한 건 실행이다. 말보다 현장이 바뀌어야 한다. 공공뿐 아니라 민간도 달라져야 한다. 기업에도 인명 사고가 일어날 경우 엄정한 처벌을 받는다는 명백한 시그널을 주어야 한다.
실제 중처법 시행 이후 변화도 감지된다. 용접공 출신 작가 천현우씨는 “중처법의 효력을 현장 와서 알았다. 지금 조선소는 무서울 정도로 안전을 강조한다. 출근하다 발만 삐끗해도 난리가 날 정도”라며 “이게 바로 중처법이 만든, 그리고 비로소 이루어진 최소한의 상식을 갖춘 기업환경”이라고 적었다. 중처법이 현장에서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효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해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는 827명이나 된다. 하루에 두 명 이상이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이 비극이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 이제 묻고 싶다. 얼마나 더 많은 노동자가 희생되어야 일터가 바뀌는가. 노동자가 안심할 수 있는 일터, 일상이 안전한 사회. 이를 만드는 것이 새 정부의 책무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