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학 목사의 우보천리] 영혼에서 시작해 세상으로 나아가라

입력 2025-06-11 03:02

지난 500년 역사에서 인류문명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 사건 하나를 뽑으라면 역사가들은 주저하지 않고 독일 신학자 마르틴 루터(1483~1546)의 종교개혁을 꼽는다. 종교개혁이 기독교 신앙은 말할 것 없고 정치 경제 문화 등 인류의 모든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자 루터는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신앙적 몸부림이 당대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까지 이처럼 강력한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그것을 염두에 두면서 신앙의 삶을 살지도 않았다. 그의 질문은 지극히 내면적 개인적 실존적이었다.

정체성 발달이론의 창시자인 미국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1902~1994)의 연구에 따르면,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신학을 단번에 터득하지 않았다. 그것을 터득하기 위해 마음이 이끌리는 곳을 더 깊이 찾아 헤매야 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 마음이 끌리는 곳을 더 깊이 찾아 헤맨 끝에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만나게 되고, 이 만남은 자신의 실존적 방황이 끝을 맺는 순간임과 동시에 중세의 장원적 봉건영주 세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시발점이 됐다.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길 끝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이 열린 것이다.

종교개혁자 루터의 진리를 향한 방황의 과정을 볼 때, 한 사람의 내면 안에는 그가 몸담아 살고 있는 세상의 문제가 응축돼 있음을 알게 된다. 개인 안에 이미 세계와 그 문제가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향한 가장 정직하고 진정성 있는 몸부림은 결코 그가 섬기는 세상의 구원을 외면한 채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문제를 붙들고 씨름할 때, 그는 이미 세상의 문제를 갖고 용틀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것은 세상의 요구에 봉사하는 것과 분리되지 않는다. 미국의 영성가이자 교육사상가인 파커 팔머는 이를 영혼(soul)과 역할(role)의 통합으로 말했다. 영혼은 단순히 육체와 대비되는 개념이 아니라 성령이 거하시는 곳이요 내면의 빛이며 동시에 내면의 교사이다. 우리는 흔히 공적 영역에서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반면에,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심지어 이기적인 태도라고 규정해 버린다. 그러나 이런 단순화된 규정은 안과 밖, 내면과 외면을 단순 분리하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잘못 유래된 것이라고 본다. 안과 밖은 하나님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영혼의 깊은 질문에 응답하여 답을 찾아낸 순간, 이미 그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를 찾은 것이다.

요즘 따라 유난히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거리로 세상 한복판으로 나가려는 사람이 많다. 내면으로 파고들어 가 세상으로 나가는 진정한 길을 찾아야 하는 교회가 오히려 이에 앞장선다. 이는 사실 종교의 길이 아니요,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다. 종교, 특히 기독교는 교부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대로 “내면으로의 여행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 영원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는” 노력을 지난 2000년간 해왔다. 그리스도인이나 교회는 빈약한 영혼을 갖고 서둘러 밖으로 나가려 하기 전에, 자기 영혼의 진실에 초집중하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영혼의 문제를 해결할 때, 교회는 세상에서 자기 역할을 하며 본연의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

이상학 새문안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