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함 앞세운 허위가 낳은 공허한 결과들…
이제 일상 속에서 인간적 가치를 찾길
이제 일상 속에서 인간적 가치를 찾길
조기 대선이 마무리됐다. 지난해 겨울부터 올해 초여름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혼란스러운 시국이 가라앉고 새로운 일상을 맞이할 희망의 국면이 찾아온 것이다. 여야의 이른바 권력 교체가 이뤄지고 정부의 전체적 국정 기조가 바뀐 것도 큰 변화겠지만, 무엇보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참고 견디고, 현명한 선택, 미래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을 위해 절차와 상식을 지켜온 대다수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되길 기대하는 분위기, 여망만큼은 부정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래서일까. 새로운 정부는 더 엄중하게 현실을 인식하고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며, 그에 부합하는 과제 역시 산적한 상태다.
그런데 이 현실을 해결하고자 집어 든 과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느 때부터인가 정치와 문화, 두 분야에서 바라본 현실 인식이 사소한 것에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과 마주하는 걸 보게 된다.
사소한 것, 사소해지는 것의 개념에는 부정적 견해와 긍정적 견해로 나눠진다. 사소한 게 뭐가 나쁘냐, 우리 사는 일상도 돌봐야 하지 않느냐고 보는 긍정적 시각이 여전하다. 하지만 소위 크고 굵직한 이슈라 할 수 있는 거대 담론을 깊이 성찰하는 시대를 잃어버리고 즉흥적이고, 근시안적인 안목만 가지고 현실을 바라보는 시대로 빠져든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도 사실이다.
사소한 것에 매달린다고 지적하는 이들은 말한다. 선출직 정치인의 공약을 들여다보는 유권자의 안목을 보면 두드러진다고. 어느 때부터인가 선거철만 되면 소환돼 온, 역시 구호가 돼 버린 민생, 국민 등의 단어가 자기네들의 전유물이 돼 과잉 전시되는 결과, 오히려 다수의 국민을 사소한 가치에나 매달리게 해 우민화해 버린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그렇다.
이처럼 사소한 것에 관한 지적과 우려를 대하는 요즈음, 한 가지 다른 목소리도 차분히 들려오는 것을 보게 된다. 사소한 가치에 관해 이제는 새로운 관점과 접근을 요구하자는 목소리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참된 시대적 요청이 아닌가 하는 생각 또한 눈을 뜨고 있다.
우리네 먹고사는 일상은 대체로 사소해 보인다. 큰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네 일상은 지나치게 미시적으로 보인다.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자극하는 지나친 선동의 미끼로 전락할 때도 많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언제부터인가 사소한 것과 거창한 것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소하다고 인지된 문제의식이 급격한 나비효과가 돼 문화나 정치적 대세를 집어삼키는 경우가 사건이 아닌 보편적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음을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이 보편은 먹고사는 일상의 한 부분, 사소해 보이지만 지나칠 수 없는, 지나쳐서는 안 되는 가치로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거창한 구호, 비장한 외침, 명분 우선주의의 정치, 그리고 문화적 가치가 표류하는 듯 보이는 이 시대를 상실의 시대라고만 부르며 개탄하는 주장에는 분명 함정이 있다. 사소한 것이라 여겼던 가치, 먹고사는 일상의 가치가 쌓이고 쌓여 정의, 평화, 연대, 사랑이란 보편 가치로 상승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되묻고 싶다. 보편 가치만을 거창하고 화려하게 주장하면서 일상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 도외시하던 이들의 정서를 지배하던 허위와 공허가 어떤 결과를 배태했는지 관해 말이다. 지난해 겨울과 올해 6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지금까지 결코 더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확연히 목격한 사회현상 역시 거창한 주장과 가르침이 낳은 공허가 아니었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잊지 말자. 이토록 사소한 일상의 소소한 부분을 톺아보고, 돌아보고, 기억하는 행위가 우선돼야 한다는 사실을. 결국, 그 사소한 것에의 집중이 우리 자신의 본래 가치를 지키고 인간다움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건강한 숲을 이루는 것은 눈에 띄는 화려하고 단단해 보이는 나무들이 아니라 대지 사이사이로 촘촘히 스며든 이름 없는 풀이란 사소한 진실을 잊지 않아야 하는 요즘이다.
주원규 소설가·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