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협상, 7월8일 맞출 필요 없어… 정상이 직접 연기 요청을”

입력 2025-06-09 18:52
경기도 평택항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진행한 첫 통화에서 조속한 관세 협상을 위한 노력을 약속하면서 새 정부에서의 ‘줄라이 패키지’ 타결 가능성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통상 분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미국의 국가별 상호관세 부과 유예가 끝나는 7월 초까지 무리해 결론을 낼 필요는 없다고 조언하면서도 그간 부재했던 정상 외교 기능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정책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인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미국이 기존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지켜서 관세를 0으로 되돌리도록 하려면 우리도 협상을 위해 준비해야 할 카드가 많고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대통령이 정식으로 협상 기한 연기를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국내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는 데 있어서도 정부가 최대한 (협상 기한 연기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 유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한·미 양국은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가 유예된 7월 8일까지 무역 균형, 비관세 장벽, 디지털 교역 등 6개 분야를 기틀로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오는 15~17일에는 캐나다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양국 정상이 별도 회담을 진행하고 관세 등에 대해 논의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이 대통령의 ‘정상 외교’가 관세 협상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내다봤다. 외교부 경제통상대사를 역임한 최석영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트럼프의 목적은 결국 자신이 협상을 타결시켰다고 주장하는 것”이라면서 “아래서 패키지를 구성해 가져가더라도 결국 마지막 체결은 대통령 몫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조속한 정상회담을 통해 그동안 다소 느슨해졌던 양국의 외교·안보 등 관계를 긴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가 7월 초라는 협상 기한에 지나치게 사로잡힐 필요가 없다고도 입을 모았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부터 겨우 한 달 사이에 한·미 간의 모든 쟁점을 해결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 고문 역시 “갓 출범한 정부가 준비는 부족하지만 의지는 강하다고 트럼프가 느낀다면 협상 기한을 늘려주는 것은 그의 마음”이라면서 “우리 스스로 7월 8일을 ‘신성불가침’처럼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당장은 기초적인 합의로 미국의 추가적인 유예를 끌어내고, 본격적인 협상은 더 시간을 갖고 진행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교수는 “7월 8일 전까지 몇 가지라도 미국과 합의를 해서 상호관세 부과 시점을 늦추고, 나머지 쟁점들은 계속 논의해 나가야 한다”며 입장 차가 비교적 작은 조선·에너지 등 분야 협력을 ‘우선 합의’가 가능한 분야로 꼽았다. 최 고문은 “강대국과의 협상일수록 의제를 한꺼번에 테이블에 올려놓고 일괄 타결하는 것이 오히려 가장 유리하다”면서 최종적으로는 ‘패키지 딜’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요구하는 농축산물 수입 제한 등 비관세 장벽 철폐에 대해서는 미국 측과 국내 이해관계자 모두를 효과적으로 설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허용할 경우 오히려 한국 소비자들의 불신이 가중돼 미국산 수입이 침체될 수 있다고 정부가 (미국 측에) 짚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협상의 여파로 손해보기 쉬운 중소기업이나 농업계에서는 양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기존에도 정부가 규제 합리화나 시장 개방을 단계적으로 해오던 부분들이 있으니 그 연장선상에서 조금 더 받아들일 만한 부분이 있는지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 전문가는 ‘국익 중심의 균형 외교’를 강조해온 이재명정부의 대(對)중국 실용주의 노선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한계가 있다고 보는 모습이었다. 이 교수는 “안보와 관련된 첨단 반도체 같은 분야는 미국 중심의 협력이 불가피하지만 다른 영역에선 중국과의 협력도 계속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허 교수는 “회색지대에 남아 돈은 중국에서 벌고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는 모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공고히 가져가되 중국과는 사안별로 협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급변하는 통상 환경에서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두고는 세 사람 의견이 갈렸다. 이 교수는 기존의 세계무역기구(WTO) 기반 다자주의 질서가 힘을 잃고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한국이 전환기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존의 다자주의 체제가 암흑기를 맞이하면서 앞으로 최소 5~10년은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는 전환기가 될 것”이라며 “세계 6위 규모 교역국인 한국이 목소리를 내 새 질서에 한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국제질서가 안정될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호무역주의 대두에 맞춰 현실적인 접근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최 고문은 “지금의 WTO는 사실상 기능을 상실한 좀비 상태에 가깝다”면서 기존 다자주의 질서 회복을 기대하는 대신 높아지는 무역 장벽과 공급망 분절화에 대응한 경제안보 대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통령실이 주도하는 경제안보 분야의 컨트롤타워 설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