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대응 앞선 호주, 농업에도 AI·로봇·빅데이터 쓴다

입력 2025-06-10 00:35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주 농업 스타트업 ‘바이오 스카우트’의 인공지능 담당자가 지난달 19일 공기 중 포자를 AI로 분석해 질병을 예방하는 기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매년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가전전시회(CES)에서는 그 해 트렌드를 주도할 첨단 기술들이 앞다퉈 선보인다. 대부분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로봇,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이다. 그런데 2023년 CES의 주인공은 예상밖으로 세계적인 농기계 제조회사 존 디어(John Deer)였다. 존 디어는 당시 로봇과 센서를 활용해 비료 살포 양을 3분의 2 이상 줄이고 생산성은 3분의 2 이상 늘리는 최첨단 발아용 비료 살포기를 발표했다.

최근 기후변화, 식량안보, 농촌의 고령화 및 인구감소 등으로 위기에 빠진 농업의 해법으로 애그테크(AgTech)가 주목받고 있다. 애그테크는 농업에 AI, 자율주행, 로봇, 드론, 빅데이터, IoT(사물인터넷) 등 최첨단 기술을 접목하는 것을 말한다.

자율주행 트랙터가 밭을 갈면 드론이 씨앗을 뿌리고 살충제를 살포한다. 각종 센서와 카메라가 장착된 스포스카우트(SporeScout)로 공기 중 포자를 포착, 그 이미지를 AI로 분석해 질병 여부를 판단한다. 이를 통해 노동력과 비용은 최소화하면서 생산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세계는 제3의 농업혁명으로 불리는 애그테크 전쟁이 한창이다.

농업선진국 호주도 주력산업인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애그테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호주 뉴사우스웨일즈(NSW)주의 애그테크 연구·개발을 주도하는 시드니대학교 농업연구소를 방문했다. 이 연구소는 NSW주와 협력해 토양 속 각종 미생물의 DNA를 분석해 병균을 예방하고, 토양의 탄소함량을 측정해 생산량 증대 방안을 모색한다. 이 과정에서 토양탐지기술(Soil Sensing Technology)이 적용된다. 시드니대 농업연구소에서 이 기술을 연구하는 장호준 박사는 “AI를 활용한 모델링으로 토양 수분을 파악해 물을 더 효율적으로 줄 수 있고 토양의 탄소 함량을 측정해 토양의 가치를 높이면서 탄소중립 달성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호주 시드니대학교 농업연구소 장호준 박사가 지난달 19일 토양탐지기술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NSW주 스타트업 ‘바이오 스카우트(Bio Scout)’는 시드니대 농업연구소에서 ‘비전 AI’ 기술을 개발한 루이스 콜린스 박사가 2020년에 설립했다. 이 회사는 포도밭 등에 설치한 기기가 공기 중 포자를 끈끈이 테이프에 붙여 현미경 카메라로 촬영하면 어떤 곰팡이성 질병의 포자인지 AI로 분석해 확인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를 토대로 지역별 질병 지도를 작성해 병원균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곳에만 살충제를 살포하기 때문에 비용 절감은 물론 작물의 농약 내성을 막을 수 있고 친환경적이다.

지난달 16일엔 호주 태즈메이니아주의 육상 양식장과 바다에서 토종 홍조류 바다고리풀(Asparagopsis)을 양식하는 ‘씨 포레스트’(Sea Forest)를 방문했다. 이 기업은 기후온난화의 주범인 메탄가스 저감에 앞장서고 있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80배 강력한 온실효과가 있다. 바다고리풀 세포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든 ‘씨 피드’를 소, 양 등 반추동물 사료에 섞어 먹이면 가축에서 발생하는 메탄을 80%까지 줄일 수 있다. 아울러 쇠고기 생산량은 6% 이상 증가되고 사료 비용은 절감된다. 가축 사료에 씨 피드를 섞어 먹이는 축산 농가는 탄소배출권을 받는다.

NSW주 남쪽 허스키슨에 있는 스타트업 파이코헬스(Phycohealth)는 밀 제분소에서 나오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와 질소를 흡수해 재배한 해초로 스킨케어와 장 건강제품 등을 만들고 있다. 파이코헬스 창립자인 피아 윈버그 박사는 “육지에서 질소를 해독하려면 1000㏊ 토지가 필요한데 해초류는 20㏊면 된다. 해초는 30~40%의 고단백질 함량으로 스킨케어에 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밀가루 제조기업 마닐드라 그룹은 밀가루 생산과 발효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재사용하는 그린플랜트를 지향하며 친환경 순환경제 시스템을 구축했다. 지난달 21일 방문한 마닐드라 본사 인근 폐수처리장에서는 제조 공정에 사용된 폐수를 정화해 인근 목초지에 제공하고 가축도 키우고 있었다. 마닐드라 관계자는 “미래를 위해 폐기물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게 관건이다. 그러지 않으면 탄소세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시드니·호바트(호주)=글·사진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