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베트남 호찌민 도심에서 2시간을 달려 도착한 바리아붕따우성의 소나대지 공단. 30여개의 한국 기업이 입주한 이곳에 자리 잡은 안전장비 제조업체 A사는 지난해 100명에 달했던 현지 노동자 수가 올해 들어 20%가량 감소했다. 퇴사자 대부분이 처우가 더 좋은 중국계 공장으로 이직했다고 한다. A사 관계자는 “건설 중인 대규모 중국 공장들이 추가로 완공되면 인력 유출이 더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회사는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셔틀버스 운영, 유류비 지원, 임금 인상률 상향 등 직원 복지 강화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실수령 기준 직원 월급이 800만동(약 42만원)을 넘어가면 공장 운영 자체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A사의 현 임금 수준은 약 700만동(약 37만원)으로 지난해 기준 베트남 1지역(하노이·호찌민 중심지) 최저임금 496만동(약 26만원)을 훨씬 웃돈다.
중국과 가까운 베트남 북부는 인력난이 더 심각하다. 삼성전자, LG, 효성 등 한국 대기업 공급망과 중국계 공장이 동시에 몰린 북부 지역에서는 한국 중소기업들이 구인난을 못이겨 사업을 접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하노이 인근 봉제 기업 B사는 내년에 현지 직원 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인도네시아로의 공장 이전을 통한 탈(脫)베트남을 추진할 계획이다. 약 15년 전부터 한국 대기업 및 협력업체 다수가 베트남 북부로 진출하면서 현지의 한국 중소기업들은 직원 확보가 어려워졌는데, 지난해부터 중국 업체들까지 가세한 상황이다. B사 법인장은 “중국 기업의 신규 공장들은 우리가 주는 월급에 300만~400만동(15만~20만원)을 더 얹어준다”고 전했다.
이처럼 베트남 진출 한국 제조업체들이 중국발 구인난과 임금 상승이라는 이중고를 겪는 중이다. 베트남을 관세 우회로로 낙점한 중국 기업들이 대거 베트남으로 몰려오면서 한국 업체 소속 직원들을 빨아들이고 있고, 이로 인해 현지 노동력 수요가 늘면서 인건비가 오르는 악순환이 나타나는 것이다. 한국무역협회 호찌민지부 관계자는 “2~3년 전부터 베트남 정부 산하 공단에 들어오는 중국 기업 수가 한국보다 2배 이상 많다”고 말했다.
인건비가 급증하면서 일부 한국 기업들의 전략 수정도 불가피해졌다. 저렴한 노동력 확보라는 애초 현지 진출 목적이 좌절되면서다. 특히 인건비 비중이 큰 노동집약 업종일수록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A사, B사의 경우 총 원가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60~70%에 달한다.
중국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은 2017년 미국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이후 고율의 대중국 관세를 피하기 위한 전략 차원에서 확대됐다. BYD, BOE, TCL 등 중국 제조 대기업들은 최근 베트남에 대규모 공장을 완공했거나 추가 증설을 진행하고 있다. 베트남 외국인투자청에 따르면 대(對)베트남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가 2022년만 해도 한국이 중국보다 1억3711억 달러 더 많았지만, 지난해에는 중국 90억7965만 달러, 한국 70억5733만 달러로 역전됐다.
고정만 하노이 베트남한인상공인연합회 지역위원장은 “치솟는 인건비 부담에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 공장을 매물로 내놨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며 “파산 사례가 급증할 가능성이 큰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호찌민=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