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만 보던 미시적 관점 벗어나 사회과학적 통찰 갖춘 리더로 양성해야”

입력 2025-06-09 18:55 수정 2025-06-09 23:56
‘사회과학과 의학교육 연구회’ 회장을 맡은 노혜린 인제대 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연구회 제공

“의사 사회는 대중과의 소통에 미숙했고 일각에선 전체주의나 권위주의적 모습이 나타났다.”

노혜린 인제대 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한국의학교육학회 정책이사)는 9일 국민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지난 1년4개월을 끌어온 의·정 갈등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그는 10일 발족하는 ‘사회과학과 의학교육 연구회’(연구회)에서 초대 회장을 맡았다.

연구회는 지난 의·정 갈등에 대한 성찰의 결과물이다. 의사 사회가 대중과 분리돼 ‘섬’처럼 고립됐다고 했다. 이는 사회과학적 통찰이 부족한 탓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연구회는 이에 공감하는 의대와 수련병원 교수 40여명이 뜻을 모아 발족했다.

노 회장은 의사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뿌리가 깊다고 말했다. 의사가 조제권을 상실한 2000년 의약분업부터 본격화됐으며, 2020년 공공의대 설치를 추진했던 문재인정부에서 골이 깊어졌다고 했다. 문재인정부 당시 의대생이었던 현재 사직 전공의들은 이미 2020년부터 ‘심리적 파업 상태였다’는 게 노 회장의 판단이다.

그는 의·정 갈등이 표면에 드러날 때마다 의사 사회는 번번이 사회 설득에 실패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노 회장은 그 원인으로 의사 사회의 미숙한 소통 능력을 지적하며, 사회과학 교육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는 “지난 25년간 의대생들을 가르치며 딱 하나 간과한 게 바로 사회과학”이라며 “환자만 보던 미시적인 의사의 관점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을 통찰할 수 있는 사회과학적 시선을 갖춘 의사 리더 양성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세상이 의사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하기보다는 정치와 언론,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사회와 국민을 설득하는 일은 곧 다른 세대를 설득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젊은 의사들이 보여준 ‘탕핑(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는) 전략’은 사회를 설득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노 회장은 탕핑이 Z세대 의대생·전공의에게 나타난 ‘극단적 개인주의’의 한 형태라고 설명했다. ‘다 같이 휴학·사직한다’는 최소한의 원칙만 공유한 뒤 무관심·무대응만 고집했다는 것이다. 노 회장은 “이들은 다른 세대에겐 말을 걸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그럼으로써) 망가진 필수·지역의료를 바로잡겠다는 취지, 휴학·사직이라는 투쟁이 갖는 공적 가치로 사회를 설득할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대학과 병원으로 돌아간 동료들의 신상을 무단 배포하고 ‘감귤’(복귀자 은어) ‘배신자’ 낙인을 찍는 ‘의료계 블랙리스트 사태’는 의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냈다. 노 회장은 이를 “개인주의가 강한 의대생·전공의를 단속하고 집단행동에 강제 동원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전체주의·권위주의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노 회장은 새로 출범한 이재명정부는 의대 증원을 강행한 윤석열정부와 다르게 의료계와 협의하면서 의료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의대생·전공의가 복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의대생과 전공의를 향해선 “‘1~2년 휴학·사직해 세상이 원하는 대로 개선되면 그때 공부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이라며 “공부와 연구, 투쟁, 개혁은 평생 함께해야 하는 과제”라고 말했다.

사회과학과 의학교육 연구회는 앞으로 의료인들에 대한 사회과학 교육 프로그램 개발, 정책 아카데미 운영, 연수원 설치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