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정의 새로운 희망 위해 기도해 주실 수 있나요”

입력 2025-06-10 03:06
강대열(오른쪽) 진해침례교회 목사와 한명주(맨 왼쪽) 사모가 지난달 29일 에티오피아 디겔루나 티조 지역에 거주하는 게네트 기르마 아동의 집을 방문해 책가방을 선물한 뒤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해발 1000m 이상 고원지대에 있는 아라비카 커피의 원산지이자 세계 10대 커피 생산국이다. 생산량 40%를 자국에서 소비할 만큼 커피는 이들의 자부심이자 일상이다.

그러나 그럴듯한 커피 향 뒤에는 하루 몇 달러로 버텨야 하는 서민들의 팍팍한 현실이 숨어있다. 인구 40%가 어린아이들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1020달러(약 135만원)남짓. 내전의 아픔과 기후 위기까지 더해져 이들의 삶은 늘 위태롭다.

“에티오피아 아이들 다수는 어린 시절부터 노동과 폭력, 극심한 빈곤에 내몰립니다. 생존이 교육보다 먼저이고 여아는 평균 15세에 결혼을 강요당합니다. 꿈꾸는 것조차 사치라 여기지요.”

에티오피아 월드비전의 케베데 기자체우 아얄레우 홍보실장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에티오피아를 찾은 ‘밀알의 기적’팀에게 전한 말이다.

기도가 가족에 희망이 되길

진해침례교회 강대열 목사와 한명주 사모, 정천 장로 그리고 월드비전·국민일보는 이날부터 지난달 30일까지 ‘밀알의 기적’ 캠페인을 통해 에티오피아 디겔루나 티조(이하 티조)을 방문해 지역 현황을 점검하고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티조는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남동쪽으로 약 200㎞ 떨어져 있다. 매연과 흙먼지를 뚫고 차로 4시간을 달려 도착한 거리엔 쓰레기와 가축, 유기동물의 배설물이 가득했다. 인구 23만명이 사는 에티오피아 내 대표적 저개발 지역임을 실감했다.

강 목사와 한 사모는 지난달 29일 12살 게네트 기르마양의 집을 찾았다. 흙벽돌로 지은 16.5㎡(약 5평) 남짓한 좁고 남루한 집의 벽 틈은 마대가 덧대 있었다. 부모와 세 살배기 남동생과 함께 사는 곳이었다. “잠은 어디서 자니”라는 강 목사의 물음에 아이는 방 한쪽을 가리키며 “부모님은 침대에서 주무시고 저랑 동생은 바닥에서 잔다”고 답했다. 닳고 해진 이불엔 닭털과 배설물이 엉겨 붙어있었다.

어머니 메세렛 타미레씨는 전통 빵 ‘다보’를 만들어 팔며 하루 1000원 남짓을 번다. 아버지 기르마 미티쿠씨는 일용직 노동자지만, 요즘 일거리가 없다. 1만2000원 정도의 월세조차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집안 형편 탓에 식모 일을 나간 둘째 딸의 소식도 끊겼다. 이런 사연을 듣던 강 목사는 조용히 다가가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기도했다.

한 사모가 아이에게 “언제 가장 즐겁냐”고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학교에서 과학을 배울 때”라고 답했다. 하지만 부모가 일하러 나가는 날이면 어린 동생을 돌보고 빨래하는 것이 그의 몫이다. 그런데도 아이는 “아픈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강 목사는 선물로 가져간 책가방을 건네며 “공부 열심히 해서 꼭 의사가 되길 바란다. 하나님이 지혜 주시고 그 꿈을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축복했다. 그러면서 물은 기도 제목에 또렷한 목소리로 답했다.

“목사님 한국에 가셔도 우리 가족을 위해 잊지 말고 계속 기도해주실 수 있나요. 저는 많은 사람의 기도가 우리 가정에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줄 거라고 믿거든요.”

12살 답지 않은 깊은 고백에 모두가 숙연해졌다. 강 목사는 아이의 손을 잡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며…

가정 방문 하루 전인 지난달 28일 밀알의 기적 팀은 1972년 티조의 사구레 마을에 세워진 사구레 몰리 초등학교에 갔다. 월드비전 지원을 기다리고 있는 이 학교는 반세기 전 모습에 머물러 있었다. 세 칸짜리 교실엔 낡은 양철 지붕이 위태롭게 얹혀 있었고 재래식 화장실엔 문도 없었다. 식수대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

열악한 환경에도 마을 아이들은 매일 한 시간 넘게 걸어 학교에 온다. 세 개의 좁은 교실에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500여명이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수업을 듣고 있다. 80명이 빽빽이 앉아야 하는 교실이지만 배움에 대한 열망은 크다. 아홉 살 안키군은 기자에게 “도서관이 생겨서 마음껏 책을 읽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이 학교에서 멀지 않은 사구레 초등학교는 전혀 다른 교육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화장실, 식수 시설, 여학생 휴식 공간은 물론 과학실과 교사용 자료실, 문해력 교실 등 체계적인 교육 환경이 조성돼 있었다. 아이들의 배움터가 이렇게 달라진 건 월드비전의 헌신적인 지원 덕분이다.

월드비전 티조 지역개발사업 매니저인 니구수 제네베씨는 “티조 지역의 취약 계층 아동들이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들의 목표”라며 “아이들이 학대와 차별에서 보호받고 안정적으로 교육을 받고 영양 공급을 받을 있도록 함께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강 목사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며 깊은 감사와 존경을 느꼈다”며 “한국에 돌아가서도 여러분의 사역을 위해 계속 기도하겠다”고 했다.

티조(에티오피아)=글·사진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