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HBM 뺀 AI칩 생산 확대… 삼성전자, 반전 계기 잡을까

입력 2025-06-10 00:23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3월 2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엔비디아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 2025’에 마련된 삼성전자 부스를 찾아 그래픽 메모리(GDDR7)에 사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주요 빅테크들이 중국 수출용 인공지능(AI) 반도체에 고대역폭메모리(HBM) 대신 그래픽 D램(GDDR)을 장착하고 있다. 경쟁사 대비 GDDR의 성능과 생산 능력에서 우위에 서 있는 삼성전자가 그간의 실적 부진을 딛고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HBM에 이어 33년간 왕좌를 지켜오던 D램 시장에서도 SK하이닉스에 선두를 내 준 삼성전자가 반전의 계기를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9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올 하반기에 B40으로 알려진 중국 수출용 AI 가속기 ‘RTX 프로 6000’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 제품은 기존 중국 수출용 칩 H20 보다 성능을 낮춘 제품으로, 가격 역시 30%가량 저렴하다.

일반적으로 AI 가속기 칩에 HBM을 넣는 것과 달리 B40에는 기존의 범용 그래픽 메모리인 GDDR 제품 ‘GDDR7’이 적용된다. GDDR은 게임용 그래픽카드를 위해 개발됐지만 일반 D램 대비 많은 데이터를 한 번에 처리하는 데 강점이 있어 서버용으로도 활용된다. D램 여러 개를 수직으로 쌓아야 하는 HBM처럼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 가격도 HBM의 절반 수준이다.

엔비디아의 B40 양산은 지난 4월 미국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관련 대중 수출 제한에 따른 조치다. 미국 정부는 1초당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 용량이 1700기가바이트(GB) 이상인 AI 가속기 칩을 중국에 수출할 때는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이런 규제에 따라 그동안 수출해오던 H20도 제재 대상에 오르자, 엔비디아는 HBM 대신 GDDR7을 넣어 대역폭을 낮추기로 한 것이다.

B40의 GDDR7 탑재 소식에 국내 반도체 업계 전반에는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퍼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가 지난 1월 출시한 게임용 그래픽카드 ‘RTX 50’ 시리즈용 GDDR7을 D램 업체 중 가장 먼저 납품한 바 있다. B40 양산에서도 삼성전자의 GDDR7 물량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면서 실적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동시에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장비·소재 기업들도 수혜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를 비롯해 AMD 등 미국의 주요 칩 제조사들이 GDDR 기반의 AI 가속기 칩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에 넘겨준 ‘D램 왕좌’를 되찾을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글로벌 D램 시장에서 점유율 34.4%를 기록해 SK하이닉스(36.9%)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GDDR7 공급 물량 증가가 삼성전자 실적에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결국 승부처는 D램이 10개씩 들어가는 HBM 분야”라며 “하반기 HBM4 조기 양산에 성공해야만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 업체들을 따돌리고 다시 D램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