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기업은 1등인데 정치는 3류라고 한다. 1류 기업에 2류 정부, 3류 정치라는 말도 흔히들 쓴다. 3류 정치가 1류 민간과 기업의 발목을 잡고 날개를 꺾는다는 식의 말들. 민간 역량은 훌륭한데 정치가 후진적이어서 문제라는 지적은 오랫동안 건전한 시민들이 공유한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정치는 저급하거나 비열하거나 무능하거나, 그도 아니면 그 전부의 이유로 비난받았다. 국회의원 정수 축소를 물으면 늘 과반 찬성이 나오는 이유다.
나는 오랫동안 이런 평가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제도화된 정치는 한 사회가 보유한 갈등 해결 능력의 평균치를 드러낸다. 정치가 3류라면 우리 사회가 가진 자질과 역량 중에서 정치에 필요한 덕목, 이를테면 갈등을 조정하고 해법을 내는 능력이 유독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에 대화와 타협이 부족하다면 우리가 수평적 합의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고, 정치의 언어가 거칠다면 우리 사회가 매일 갈고 닦는 언어가 공격과 비난, 혐오의 언어라는 뜻이다.
6·3 대선 3차 TV토론회에서 나온 이준석 후보의 언어폭력이 대표적이다. 그의 공격적 언어 선택과 토론 태도는 개인 발명품이 아니다. 특정 그룹이 음지에서 연마한 언어 습관이 이준석이라는 매개에 스며들었다가 양지로 흘러넘친 것이다. 비주류 내집단의 환호와 칭송에 둘러싸인 그는 자신에게 왜 이토록 거센 비판이 쏟아지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거다. 덧붙여 정치의 사법화를 한탄하는 이들은 주변을 둘러보라. 학부모부터 교사, 학생, 이웃, 동료까지 갈등이 생기면 모두가 법원으로 달려간다. 일상의 사법화는 오래된 일이다. 우리 정치에 뭔가 없다면 그건 우리에게 그게 없기 때문에 없는 것이다.
비관론 같지만 뒤집자면 이런 얘기도 된다. 우리가 무언가 끝내주게 잘해냈다면 우리가 함께 해나가는 정치도 그걸 그만큼 잘해낼 거라고 믿어도 좋다. 속도, 효율, 단합, 결단. 지난 6개월 우리 정치가 보여준 놀라운 행동력은 정치 안에 유능함의 DNA가 있음을 증명한 시간이었다. 세계 몇 등을 따지는 유능이 아니다. 정치가 시민 목소리를 듣고 폭발하는 에너지를 흡수해 움직이고 바꾸고 모색해서 결국 해법을 찾아냈다는 뜻에서의 유능함이다.
12·3 비상계엄 이후 하루도 불안하지 않은 날이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그 기간은 한국 정치의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한 신뢰를 회복한 시간이었다. 불안과 기대를 오가는 동안 정치의 경쟁력과 유권자로서의 효능감을 두텁게 확인했다. 실망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래도 내란을 끝내고 국가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우리가 여기까지 걸어온 건 넓게는 시민사회를 포함한 거리의 정치와 제때 적절한 조치를 한 국회 덕분이었다고 믿는다. 정치의 힘이다. 어디에도 말할 곳은 없었지만 내내 고마운 마음이었다.
위기는 건넜지만 우리 정치에도, 공동체에도 난제는 남았다. 대화를 통해 갈등을 조정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조언은 능력에 부쳐서 대선을 지켜보며 아쉬웠던 한 가지만 말해 본다. 막판 불거진 대통령 후보 본인의 언어폭력과 후보 배우자·지지자의 실언이 설화로 묶여 ‘균형 있게’ 비판받는 상황이 나는 불만스러웠다. 특정인 발언에 더 분노하거나 실망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선거에서 윤리적 판단보다 중요한 건 현실 정치에 미칠 영향력이다. 지난 3년 예외적 상황을 겪기는 했지만 배우자의 노조관과 당원도 아닌 지지자의 여성관은 새 정부의 노동과 여성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게 국가 시스템이다.
중요한 이슈에 검증 에너지를 배정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정치는 시작될 수 있다. 가짜 이슈의 거품이 사라져야 해답을 찾는 진짜 대화가 시작될 수 있어서다.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