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에 한 장의 사진이 SNS에서 눈길을 끌었다. 출근길의 만원 지하철 안에서 시각장애인 안내견인 리트리버 한 마리가 조용히 바닥에 누워서 자는 사진이었다. 누리꾼들은 한발 물러서서 공간을 만들어준 승객들을 칭찬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안쓰럽다”는 반응도 보였다. 진짜 잠에 든 걸까. 박태진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장은 “낯선 환경이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안내견은 잠들지 않는다. 파트너와의 관계가 안정적이고 주변 환경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야 잠에 든다”고 말했다.
안내견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박 교장의 말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안내견 후보 강아지들은 약 1년간 ‘사회화 교육’(퍼피워킹)을 받는다. 지난달 23일 경기도 수원시에 사는 퍼피워커 홍소연(50)씨를 만났다. 홍씨는 3개월 된 리트리버 ‘칸초’의 교육을 맡고 있다. 칸초의 하루는 정해진 순서대로 반복된다. 배변을 마친 칸초는 울타리 출입문에 앉아 주인을 차분하게 기다렸다. 배변해야 놀이 시간이 오기 때문이다. 홍씨는 앉아서 기다리는 모습을 칭찬하며 간식을 줬다. 모든 훈련은 강아지가 교육된 행동을 수행할 때마다 사료를 주는 식으로 이뤄진다. 홍씨는 “사람들이 퍼피워킹 강아지를 보면 ‘불쌍하다’고 말하지만, 강아지들도 일하는 시간과 노는 시간을 구분하고 절제하는 방법을 놀이로 배운다”고 설명했다.
퍼피워킹을 끝낸 강아지들은 전문훈련사 지도에 따라 6~8개월 동안 본격적인 안내견 훈련을 받는다. 이 훈련은 지하철, 버스, 상가, 도로 등 실제 생활공간에서 이뤄진다. 교육을 마친 성견들을 기다리는 건 최종 테스트다. 지난달 22일 수도권 지하철 수인분당선 서현역에선 눈을 가린 훈련사들이 직접 훈련한 안내견과 수내역을 오가는 평가를 진행하고 있었다. 평가를 받는 안내견 중 30%만 통과한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이명호(46) 훈련사는 “평가와 훈련을 진행하며 파악한 기질이 안내견에 적합한 개들만 합격한다. 너무 흥분하거나 외부 환경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개들은 안내견이 될 수 없다”고 전했다.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에게는 단순하게 도움을 주는 존재가 아닌 세상을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다. 시각장애인 장승희(24)씨는 4년째 경기 용인시에서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까지 안내견 ‘정성’이와 통학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한양대 교정에서 만난 장씨는 “친동생이 아픈 것보다 정성이가 아픈 게 더 속상했었다”고 했다. 장씨는 “정성이와 함께하니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졌다. 모르는 사람과도 좀 더 쉽게 대화를 할 수 있었고 대학 친구들도 정성이를 반겨줬다”고 말했다. 장씨는 정성이가 가끔 집중을 놓치거나 냄새를 맡다가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함께 호흡을 맞춰가는 게 더 소중하다고 했다.
수원·성남·용인=사진·글 최현규 기자 froste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