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한인교회 ‘도시락 합작’… 쓰레기 마을에 희망 배달

입력 2025-06-10 03:03
인도네시아 탕에랑 세완마을 주민들이 최근 마을 입구에서 선교사 부부가 나눠주는 도시락을 받아들고 있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서쪽으로 약 30분 떨어진 탕에랑에는 일명 ‘쓰레기 마을’이라고 불리는 세완마을이 있다. 이 지역에 사는 빈민들은 쓰레기가 귀한 자원이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옷가지를 주워 입고 그나마 쓸 만한 물건을 골라 고물상에 내다 팔며 생계를 유지한다.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에는 아침부터 이곳 주민들이 마을 입구에 긴 줄을 선다. 임진철(53·기아대책 파송) 하수민(45) 선교사 부부가 도시락을 싸 들고 찾아오기 때문이다.

최근 세완마을에서 만난 임 선교사는 현지인 도움을 받아 질서 있게 서 있는 주민들에게 도시락과 물을 전달했다. 메뉴는 밥과 닭고기 그리고 오이샐러드다. 주민들은 이 도시락으로 하루를 버틴다.

임 선교사는 “가족 수만큼 도시락을 나눠 주는데 가끔 거짓말로 도시락을 많이 받아 가려는 이들이 있다”며 “상황을 잘 아는 현지인이 정확한 수대로 도시락을 나눠준다”고 웃었다.

파리가 날리고 쓰레기 냄새가 진동하는 마을에서 주민들의 표정은 밝았다. 임 선교사에게 배운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선교사 주변을 맴돌다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임진철(오른쪽) 하수민 선교사 모습.

이날 준비된 도시락 600여개는 순식간에 동이 났다. 인근 한인교회 성도들이 아침 일찍부터 만든 도시락이다. 하 선교사는 “자카르타 한마음교회와 소망교회 땅그랑교민교회 등 성도들이 순번을 정해 봉사하러 오신다”며 “하루에 요리해야 하는 닭이 80마리가 넘는다. 일일이 손질하고 양념을 재워둔 닭을 조리해서 정성스럽게 담아왔다”고 설명했다.

임 선교사 부부는 2년 전 인도네시아에 왔다. 인도에서 17년 동안 선교하다가 추방된 후 새롭게 정착한 선교지다. 은퇴를 앞둔 성경득 선교사가 2014년부터 해오던 사역을 이어받아 함께하고 있다.

오직 인도 복음화만 생각했던 부부에게 인도네시아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하 선교사는 “인도에서는 다른 선교사님들을 도울 정도로 시니어 선교사였는데 여기 오니까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인도가 그리워서 많이 울기도 했다”며 “하지만 쓰레기 마을 아이들을 만난 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에 보내신 이유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임 선교사 부부는 매주 화요일 세완마을 가정을 방문해 생필품을 나눠주고 기도를 해준다. 무슬림 국가이지만 아픈 자녀를 보여주며 기도를 요청하는 부모도 있는 등 점차 친밀해짐을 느끼고 있다.

임 선교사는 훗날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는 게 목표다. 하 선교사는 부부의 모습을 보고 현지인들이 예수님을 느끼길 기대하고 있다. 하 선교사의 말이다.

“인도에서 가르쳤던 아이들이 자라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도를 요청하러 올 때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몰라요. 인도네시아에서도 아이들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궁금해할 정도로 신실한 모습을 보이기 원합니다.”

탕에랑(인도네시아)=글·사진 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