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새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12·3 계엄 사태로 드리웠던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있습니다.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과 조력자들이 제대로 수사받고 사법 판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전쟁도 아닌 평화 시기에 헌법을 유린하며 ‘비상 대권’ 운운한 대통령의 파면은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향하는 나라라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목사 장로 권사 가운데 “그토록 열심히 기도했는데 왜 하나님은 우리 편이 돼 주지 않는가”라고 원망 섞인 탄식을 하는 분들이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과연 누구 편에 서는가.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주는 건가. 하나님을 자기편이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 질문은 사실 오래된 물음입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on our side)인지 아닌지는 제 관심사가 아닙니다. 제가 가장 깊이 염려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편에(on God’s side) 서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옳기 때문입니다.”
당시 북군과 남군 모두 자기편에 하나님이 서 계시길 바라며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링컨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우리 편으로 끌어당기려 하지 말고 우리가 그분 뜻에 맞게 그분 편에 서야 한다고 말입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성경에도 나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근처에 이르렀을 때 칼을 든 한 사람을 만납니다. 여호수아는 묻습니다. “너는 우리 편이냐, 우리 원수 편이냐?”(수 5:13) 그러자 그 사람은 대답합니다. “아니다. 나는 주님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다.”(수 5:14)
여기서 ‘아니다’(히브리어 ‘로’)란 이 한마디가 의미심장합니다. 그는 여호수아에게 “나는 너희 편도 아니고 너희 원수 편도 아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일하러 온 자다”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그가 여호수아에게 묻고 싶었을 겁니다. “너는 누구 편에 서겠는가. 여호와의 편인가, 너 자신 편인가.” 훗날 세겜 언약에서 여호수아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그렇다면 하나님 편에 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그분의 편에 서 있는 걸까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분”(행 17:25)이며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똑같이 비추고,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모두에게 내리는 분(마 5:45)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배제하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그리스도인은 차별 없이 모든 이를 품는 보편주의자로 살아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공의를 사랑하며 교만한 자를 대적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약 4:6) 상한 마음을 가진 자를 가까이하고 회개하는 자를 구원합니다.(시 34:18)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죄인과 병든 자, 소외된 자와 함께하며 억눌린 자와 잃어버린 자의 편에 섰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주린 자, 목마른 자, 외국인, 헐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을 돌본 자를 의인이라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의인 편에 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린 자, 목마른 자, 외국인, 헐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를 돌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고통받는 자, 힘없는 자, 가난한 자, 배척당한 자의 편에 섭니다. 하나님은 약자 편에 섭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돕고 품는 것이 하나님 편에 서는 길입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제 “하나님이 왜 우리 편에 서지 않는가”가 아닙니다. “우리가 과연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 이것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입니다. 평안을 빕니다.
(한동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