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지금 ‘누군가의 간병이 필요한 순간’은 예외가 아닌 일상이다. 병원에서 보호자가 직접 간병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제도지만 그마저도 여건이 안 되면 사비로 간병인을 고용하거나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월 300만원에 달하는 간병비는 평생 모은 자산을 바닥내고 가족의 삶까지 무너뜨린다. 이재명 대통령은 간병비 급여화를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실천할 것만 공약하는 이재명’이니 이미 개혁의 동력은 생겼다. 이 기회의 창을 놓치지 않고 현실적 로드맵을 구체화해 실천의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정책 담당자들의 몫이다.
간병비 급여화는 단순한 재원 중심의 복지 확장이 아니다. 의료와 돌봄제공 체계의 거대 구조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2023년 12월 26일자 국민일보 시론에서 ‘간병비 걱정 없는 나라’의 골자를 제시했다. 첫째, 일반 병원은 모두 보호자 없는 병원으로 운영하고 둘째, 요양병원 간병비는 요양병원의 단계별 재편과 병행해 급여화하며 셋째, 방문의료와 방문간호 등 재가의료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최근 대선 과정에서 간병비 급여화 재원이 연간 15조원이라는 과장된 수치가 나왔다. 이는 가족 수발 시간을 비용으로 환산한 간접비용의 추정치를 포함한 것이다. 이 재원 모두 정부가 마련해야 간병비 급여화가 된다는 생각은 제도를 오해한 것이다. 일반병원과 요양병원의 간병인에 대한 보수로 지불되는 간병비는 많아야 5조원이다. 그중 건강보험 등 공공제도가 지불할 돈은 2조원 미만이다. 일본 등 선험국가에서 문제가 됐던 ‘사회적 입원’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피하려면 간병서비스에 대한 환자 본인 부담이 일반 의료서비스보다 높게 설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간병비 급여화를 위한 재원 규모의 증가는 점진적이므로 초기에는 일부 재원으로 가능하다. 요양병원 등 제공 체계의 개편은 10년 이상 시간을 요한다. 현재의 건강보험 누적흑자 30조원의 일부만으로도 간병비 걱정 없는 나라의 초석을 다지기에 충분하다.
대선 토론에서 상대 후보는 앞으로 5년 후 건강보험 적자가 30조원라는 허황된 수치까지 곁들여 이 대통령을 추궁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확대’ ‘요양병원의 구조개편을 통한 점진적 이행’ ‘의료쇼핑 등의 효율화를 통해 일부 재원 확보’ 등 이 대통령의 답변은 전체 구조를 꿰뚫는 핵심을 담았다. 간병비 구조를 파악해 사전에 후보에게 브리핑한 똑똑한 참모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핵심 내용을 소화하는 새 대통령의 능력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새 정부는 ‘보호자 없는 병원’과 ‘요양병원 구조개편’과 ‘재가의료·돌봄’의 이행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앞엣것은 임기 내 완수하고, 뒤의 둘은 10개년 계획을 제시한 뒤 현 정부는 개혁의 초석을 다지면 된다. 지킬 약속만 가려서 하는 대통령이니 이번엔 되리라 믿는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