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통합과 실용’ 이재명정부 성공 조건

입력 2025-06-10 00:34

이재명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정의로운 통합 정부, 유연한 실용 정부가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통상 대통령 취임사는 중요한 정치적 함의가 있다. 새 대통령의 정치철학, 주요 정책 방향, 그리고 국정 목표를 국민들에게 명확히 전달한다. 이는 정부의 향후 행보를 예측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대선 과정에서 나타났던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모든 국민을 아우르며 통합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회가 된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든 크게 통합하라는 대통령의 또 다른 의미에 따라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필요하고 유용하면 구별 없이 쓰겠다”며 “이재명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중요한 것은 취임사가 얼마나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고, 앞으로의 국정 운영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느냐 여부다. 통합과 실용이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닌 실질적인 국정 운영의 최고 가치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국민 통합을 위해선 무엇보다 소통과 경청, 공정하고 포용적인 국정 운영, 그리고 화합과 상생의 리더십을 통해 국민들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국민 통합을 진정 실천하려면 “공존과 통합의 가치 위에 소통과 대화를 복원하고, 양보하고 타협하는 정치를 되살리겠다”는 취임사 약속을 지키면 된다.

더불어 극한 대결 정치를 촉발하는 다수 여당의 입법 독주부터 멈추고, 입법·행정·사법 3권을 장악하려는 절대 권력의 유혹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국민 통합을 유독 강조한 문재인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적폐 청산을 추진했고, 이로 인해 진보·보수의 극단적 대결정치가 판을 쳤다. 이는 5년 후 정권교체의 빌미가 됐다. 단언컨대 이재명정부가 내란 청산을 국정 운영의 최고 과제로 추진할 경우 통합과 협치는 사라지고 정치보복 프레임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새 정부는 내란 청산이라는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용기 있는 봉합’을 통해 국민 통합을 이뤄내야 한다.

또한 기후 위기, 인공지능(AI), 인구 감소 등 대한민국의 미래를 뒤흔들 변화에 대비해 성장과 통합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실용적 시장주의는 자유로운 경제 활동, 사유재산권 존중, 경쟁 등과 같은 전통적인 시장주의 원칙을 존중하면서도 시장의 실패를 인정하고 사회적 형평성, 안정성 등 공동체의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의 적절한 개입을 인정하는 경제사상이다. 이는 이재명정부가 추진하려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교육, 의료 등을 보장하는 기본사회 기조와도 맥을 같이한다.

그런데 재정 확충을 통해 복지 정책을 확대하고 소득 재분배를 추진하는 기본사회에 너무 무게 중심을 두면 실용적 시장주의는 흔들리게 된다. 반대로 규제 개혁과 노동시장 유연화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시장의 효율성을 최대한 높여 부를 창출하고, 동시에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효율적인 정책을 추진하면 실용적 시장주의는 성과를 낼 수 있다. 따라서 집권 여당은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안, 주4.5일제, 정년 연장 추진 등 기업을 옥죄는 법안에 신중해야 한다. 이재명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는 재정을 풀어 경제를 순환시킴으로써 성장을 이끄는 것이다. 이는 실패한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 성장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이재명정부가 실용과 통합의 정부가 되기 위해선 시장의 효율성과 정부의 역할, 그리고 사회적 가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를 내야 할 것이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