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헌(65) 선교사가 말라위 ‘에파타덴탈클리닉’(에바다치과진료소) 문을 열어젖히자 주변을 거닐던 난민들이 관심을 보이며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곳은 치과 전문의인 강 선교사가 의료선교를 펼치는 진료소 중 하나다.
갈색 벽돌로 지어진 단층 건물 16.5㎡(5평) 넓이의 진료소에는 최신식 치과 치료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20대 아프리카 청년 두 명이 진료소를 찾은 중년 여성의 치아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진찰했다. 강 선교사는 그들 옆에서 틈틈이 조언을 건넸다.
최근 강 선교사를 만난 진료소는 말라위 수도 릴롱궤 인근 잘레카(Dzaleka) 난민캠프에 있었다. 캠프에는 내전 등을 피해 콩고민주공화국 부룬디 르완다 등지에서 온 5만2000여명의 난민과 망명 신청자가 살고 있었다. 강 선교사는 주기적으로 이곳을 찾아 무료 진료를 하고 있다. 앞서 진찰하던 청년들은 강 선교사의 제자로 말라위대 보건대학 치의과 학부생인 이삭 루크 줄리오(25)씨와 노엘 카수페(24)씨였다.
강 선교사는 “20년 가까이 우크라이나와 몽골에서 현지인 제자들을 가르쳐왔는데 어느 날 아프리카의 경우 의료 공급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말을 듣게 됐다”며 “교육도 중요하지만 공급이 없는 곳에서 우선 하나의 공급원이 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이곳으로 옮긴 게 벌써 10년”이라며 웃었다.
19세기 말 우리나라에서 의료선교를 펼친 로제타 홀(1865~1951) 선교사의 헌신은 박에스더(1876~1910)라는 한국 최초의 여성 의사를 길러내는 자양분이 됐다.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 땅에 뿌려진 선교의 씨앗은 140년이 흐른 지금, 강 선교사와 같은 열매로 맺어졌고 이역만리의 말라위에서 또다시 제자교육이란 씨앗으로 성장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따뜻한 심장’이란 별칭의 말라위는 여느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내전이 많지 않았다. 이는 기독교인 비율이 80%에 달하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정부 회의뿐 아니라 지방 촌장들 회의 때도 기도로 시작하고 마칠 정도다. 하지만 말라위는 1964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마땅한 부존자원 없이 오로지 농업에 의존하고 있어 경제 여건이 매우 열악하다. 아내인 주수경(65) 선교사와 함께 2015년 이곳에 온 강 선교사가 말라위 다음세대를 길러내는 사역에 집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말라위 수도인 릴롱궤 인근 구물리라 지역에서 이들 부부가 운영하는 치소모아동센터를 찾았다. 붉은색 흙벽에 양철지붕을 얻은 99.2㎡(30평) 넓이의 교실에 100여명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교실은 과거 한국의 열악한 시골 학교를 연상케 했다. 센터 이름인 치소모는 ‘은혜’라는 의미이다. 해외 선교사를 통해 선진교육이 시작된 과거 한국처럼 말라위에서도 선교사를 통해 다음세대가 자라나고 있었다. 말라위는 우리나라 중학교 2학년에 해당하는 8학년까지 의무교육이다. 하지만 4학년 진학을 앞두고 치러지는 시험에서 많은 학생이 탈락한다. 더욱이 이때 가난한 가정 형편을 이유로 대다수가 학업을 중도 포기한다고 했다.
강 선교사 부부가 2017년 치소모아동센터를 세운 이유는 아이들이 적어도 8학년까지 학교를 다니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2021년 서울 행복한우리교회(윤영지 목사)의 후원으로 지금의 건물을 지었다. 현재 세 명의 현지인 교사가 아이들 60여명의 학업을 돕고 있다.
마달리소 치무카(37)씨는 이 센터에서 4년째 봉사 중이다. 인근 공립 초등학교 교사이기도 한 그는 “아이들을 좋아했는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이곳에서 봉사하게 됐다”며 “예수님의 제자를 만드는 일에 일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강 선교사 부부의 헌신은 아이들에게 용기를 준다”며 “아이들이 영적으로 잘 성장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하나의 성공 사례가 되도록 도우려 한다”고 덧붙였다.
센터장 존 움쿨레사(42) 목사도 “센터의 제자화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이 하나님께로 나오고 아이들 마음에 하나님이 내재한 삶을 살도록 가르치려 한다”며 “지역사회와 국가를 위해 헌신할 아이들을 길러내는 이 사역을 위해 한국교회도 많이 기도해달라”고 당부했다.
케티 살라니야마(12)양은 칠 남매 중 넷째다. 독서를 좋아한다는 그는 “성경 속 모세 이야기를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며 “모세처럼 사람들을 독려하고 이끄는 리더가 되고 싶다”고 수줍게 말했다. 케티는 “나중에 커서 강 선교사님처럼 의사가 되고 싶다”며 “한국에도 가보고 싶다”고 전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강 선교사는 “오케이! 열심히 공부하면 꼭 데려가겠다”며 약속했다.
강 선교사 부부는 현재 기술 교육의 하나로 봉제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의 독지가로부터 재봉틀 15대를 지원받았고 교육을 위해 현지인 재봉사도 섭외했다. 강 선교사는 “여자아이들을 위한 생리대 제작 방법부터 교육하려 한다”며 “납품까지 이어져 조그만 수익이라도 아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 같은 교육은 자립으로 이어져 ‘지속가능성’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 선교사는 “선교 철학 중 하나가 ‘선교사보다 현지인이 더 잘한다’이다”라며 “현지인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일일이 다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서는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료소에서 만난 줄리오씨는 열일곱 살 무렵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보여달라고 기도하며 의사를 꿈꾸게 됐다고 했다. 그는 “강 선교사님은 늘 ‘네가 하는 일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하시며 꿈을 위한 노력뿐 아니라 환자와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의 중요성도 가르쳐 주셨다”고 말했다. 훗날 치과의사로서 받은 소명을 펼쳐나가는 모습을 자신보다 어린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강지헌·주수경 선교사 부부는
전문성 갖춘 평신도 선교사들… 현지인 존중·협력에 무게
전문성 갖춘 평신도 선교사들… 현지인 존중·협력에 무게
65세 동갑인 강지헌 주수경 선교사 부부는 1994년 선교사 파송을 받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 세계선교부와 치괴의료선교회의 파송으로 우크라이나(1996~2000)와 몽골(2001~2014)을 거쳐 지금의 말라위에 정착했다. 의료 선교와 여성 성경공부 모임, 빈곤 아동과 가정 지원 사역 등을 펼쳐왔다.
부부 선교사의 모토 중 하나는 ‘늘 유연하게(Stay flexible)’이다. 강 선교사는 “나를 내려놓고 현지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며 현지를 존중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온정주의적 시각이나 수직관계로 현지인과 관계 맺기보다는 현지인과의 협력과 상호 존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인 이들의 사역은 일터에서 하나님께 받은 소명을 감당하는 ‘비즈니스 선교(BAM·Business As Mission)’와 맞닿아 있다. 강 선교사는 “BAM은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만을 목적으로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선교 개념”이라며 “전문성은 물론 피고용인에 대한 인간적 대우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역”이라고 설명했다. 주 선교사는 “목회자나 교회 중심 사역 대신 이제는 평신도 선교사를 중심으로 전문성을 갖고 현지인의 일상에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선교 사역이라야 복음이 잘 전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 선교사는 현지 치과의사들과 치과대 학생을 교육하는 일에 집중하면서 말라위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헌신하려 한다. 주 선교사는 ‘어머니 학교’를 현지에 정착해 현지 가정을 회복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강 선교사는 “안광복 목사님을 비롯한 청주 상당교회의 아낌없는 지원과 격려에 감사드린다”며 “하나님 나라의 일원으로서 맡겨진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주 선교사는 “사역으로 나를 증명하려 했던 젊은 날의 치기를 버리고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말라위에서의 모든 발걸음과 노력이 주님께 부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릴롱궤·구물리라·잘레카(말라위)=글·사진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