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적 성장’에 방향성 두고… 양극화와 정면승부해야”

입력 2025-06-08 18:56 수정 2025-06-09 16:04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가 8일 국민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경제 양극화를 한국사회의 근본 문제로 진단하고, 이재명정부를 향해선 “포용적 성장 또는 뉴딜(New Deal)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정우 교수 제공

노무현정부 대통령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낸 이정우(74) 경북대 명예교수는 경제적 양극화를 한국사회의 근본 문제로 꼽고 이재명정부가 이 문제와 ‘정면승부’를 펼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이 명예교수는 8일 국민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불황이 심할수록 경제적 양극화가 커지는 법”이라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식당·카페가 연달아 문을 닫는 등 국내 경기가 싸늘하게 식으며 불평등이 더 악화됐다는 진단이다. 한국은 지난해 기준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처음으로 5000만원(3만6745달러)을 넘는 등 성장을 지속해 왔지만 최근 성장률이 둔화되면서 경제적 양극화에 대한 우려도 커져 왔다.

이 명예교수는 경제적 양극화 해소를 위해선 전임 정부의 시행착오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재인정부에 대해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방향은 옳았지만 세부적으로는 최저임금 인상에 너무 큰 비중을 두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 개선, 부동산 대란 방지를 통한 서민 보호 등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 한마디로 말하면 포용적 성장 또는 뉴딜(New Deal)”이라고 말했다.

이 명예교수는 양극화 문제 해결의 핵심축으로 노동자, 청년, 노인을 꼽았다. 양극화에 따른 피해에 노출되기 쉬운 이들을 앞서 들여다봐야 한다는 의미다. 먼저 노동자의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 비정규직 문제 등이 고질적으로 존재하는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가 놓여 있다. 이 명예교수는 대·중소기업 간 격차에 대해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에는 임금 격차 등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며 대기업의 ‘보상 의무’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는 “중소기업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것을 정부가 관여할 수는 없다”면서도 “대기업이 숙련된 중소기업 노동자를 데려가는 경우 중소기업에 그 직원에게 들였을 투자금액을 보상하도록 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에서 받은 보상으로 후속 인력을 양성할 여유를 주자는 것이다.

그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선 “한국의 비정규직은 대부분 기간제 노동이라는 차별적이고 불안정한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의 문제”라며 “한국 비정규직은 수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세계에서 최악”이라고 규정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국내 비정규직 근로자는 845만9000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8.2%다. 2021년(38.4%)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이 명예교수는 산업별 특수성을 고려한다는 전제하에 제한된 사유에 한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을 허용하는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청년 문제에 대해서는 “자산 불평등, 특히 부동산 불평등이 심하다”고 진단하며 소득 양극화가 자산 양극화로 이어져 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늦추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무현정부 대통령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는 8일 국민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재명정부는 경제적 불평등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이 세계에서 독보적으로 최악의 국가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정우 교수 제공

이 명예교수는 “한국 부동산 가격을 대폭 낮추지 않는다면 청년의 미래는 물론 한국 경제가 살아날 수 없다”며 “집값을 대폭 낮춰 사회초년생들이 집을 사거나 낮은 집세로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등 부동산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통계청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4년 사회조사’에서 미혼남녀 10명 중 3명(33.4%)은 저출생 대책으로 주거 지원이 필요하다고 꼽았다.

여전히 심각한 노인 빈곤 문제도 경제적 양극화의 주된 배경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눈에 보는 연금 2023’ 보고서를 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66세 이상 인구의 소득 빈곤율은 40.4%로 OECD 회원국 평균(14.2%)의 3배 가까이 된다. 이 명예교수는 노인 빈곤 문제에 대해서는 장기적으로 국민연금 개혁을 통해 혜택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현행 국민연금 체계는 수령하는 액수가 낮아 보호 기능이 약하다고 봤다. 보건복지부, 국민연금공단 등에 따르면 수급 연령에 도달해 받는 국민연금인 노령연금은 올해 기준 월평균 약 66만9523원이고 최고액 수급자의 경우는 약 296만100원이다.

이 명예교수는 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할 또 다른 대책으로 보유 자산이나 근로 여부와 관계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현금소득을 의미하는 ‘기본소득’을 제안했다. 그는 “유아기 청년기 노년기를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은 장점이 더 많다”며 “유아기에는 고질적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 청년기에는 주거 문제나 인적자본 축적을 돕기 위해, 노년기에는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그는 농어촌 기본소득 등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한 지원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 명예교수는 “농어촌 기본소득, 예술가 기본소득 같은 것은 기본소득 취지에 맞지 않고 그 자체로 불공정 논란과 각종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어 시행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농어촌 기본소득 도입을 약속하고 월 15만~20만원 상당의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명예교수는 “불평등은 소수의 가진 자들에게는 막대한 불로소득을 안겨주면서 다수 국민을 고통의 나락에 빠뜨린다”며 “정부는 이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이 세계에서 독보적으로 최악의 국가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세종=김윤 기자 k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