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브랜드를 중심으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잇달아 인력 감축에 나섰다. 세계 1위 자동차 시장인 중국 시장 점유율이 급격히 쪼그라들고 있고 2위 시장 미국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던진 관세 폭탄으로 경영 상황이 악화해서다. 이런 위기를 극복할 뾰족한 대책이 마땅찮은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빼든 카드가 구조조정이다.
8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볼보는 최근 임직원 약 3000명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 스웨덴 본사 사무직 1200명, 영업사원 1000명, 해외 직원 800명가량이 대상이다. 볼보 전체 직원의 7% 수준이다. 볼보는 180억크로나(약 2조5544억원)의 비용 절감을 추진 중이다. 이번 인력 감축은 이 같은 계획의 일환이다. 볼보는 올해 1분기 글로벌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2% 줄었다. 영업이익 감소 폭은 60%에 달한다. 하칸 사무엘손 볼보 최고경영자(CEO)는 “자동차 산업이 도전에 직면했다”고 했다.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3만5000명을 감원할 계획이다. 이미 7000명 넘는 직원을 해고했다.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다국적 회사 스텔란티스도 지난 4월 미국 5개 공장에서 근로자 900명을 한꺼번에 잘랐다. 멕시코와 캐나다에선 각각 조립 공장 1곳의 가동을 중단했다. 일본 브랜드 중엔 닛산이 지난해 10월 밝혔던 9000명 규모 감원 계획을 최근 2만명으로 확대했다. 2027년까지 전 세계 생산 공장을 17곳에서 10곳으로 줄이기로 했다. 지난 4월 취임한 에스피노사 닛산 CEO는 “매우 슬프고 고통스러운 결정”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칼을 빼 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중국 사업의 부진이다. 올해 1분기 글로벌 판매량(약 2217만4000대) 중 중국(약 746만7000대)이 차지하는 비중은 33.7%에 달한다. 이런 중국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자동차 회사가 고전하고 있다. 지난 1~4월 중국 판매량 상위 20개 업체 중 유럽·일본 회사는 8곳이다. 이 중 토요타(1.20%)를 제외한 7개사의 판매량이 전년 대비 큰 폭으로 줄었다. 폭스바겐(-7.82%), 테슬라(-5.96%), BMW(-12.64%), 혼다(-24.96%), 메르세데스 벤츠(-13.87%), 아우디(-33.40%), 닛산(-29.59%) 등이다.
2위 시장 미국은 올해 1분기 약 402만6000대를 판매했다. 전 세계 판매량의 18.2%를 차지한다. 중국과 미국이 글로벌 판매량의 절반을 넘는다. 미국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가 발목을 잡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미국 관세가 본격화하면 유럽과 중국에 공장이 많은 유럽계 회사는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잘려나가는 건 직원뿐만이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지난달까지 1년간 상위 50개 자동차 회사 중 볼보·스텔란티스·닛산 등 11곳의 수장이 교체됐다. 직원 구조조정을 단행한 회사와 대체로 겹친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