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가공식품의 필수 원료인 ‘정제소금’이 공급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단 한 곳밖에 없는 국내 정제소금 생산업체 설비가 노후화로 가동 중지 위험도가 높아진 탓이다. 재고를 고려해도 4일 이상 멈춰 서면 국내 가공식품 업체들의 생산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중국산이라는 대안이 있지만 수입 의존도를 높이게 돼 문제가 크다. ‘요소수’처럼 수입 의존도가 높아지며 가공식품 업계가 대외 환경에 휘둘릴 수 있다. 먹거리 경제 안보 차원에서도 선제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8일 한주소금에 따르면 연간 국내 정제소금 생산량은 16만~17만t이다. 국산 정제소금은 유통업계 추정 상 연간 25만t 안팎으로 수입되는 중국산과 함께 국내 가공식품 원료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국내에서 정제소금을 생산하는 곳은 전신인 세안통상 제염공장의 명맥을 이은 한주소금이 유일하다.
정제소금 공급은 가공식품 생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염화나트륨(NaCl) 순도가 제각각인 일반소금과 달리 정제소금은 NaCl 순도가 99%를 웃돈다. 일정한 품질을 요구하는 가공식품은 정제소금 사용이 필수적이다.
꾸준한 공급이 중요한 품목이지만 최근 공급 라인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한주소금 설비가 50년이나 되다 보니 노후도가 심각해졌다. 지난해에만 2차례나 공장이 멈췄다고 한다. 이 중 한 차례는 설비 보수 때문에 15일간 가동을 못 했다. 한주소금이 보유한 재고량은 3~4일분뿐이어서 당시 국산품을 쓰는 국내 식품 가공업체들도 공장 가동에 차질을 빚었다.
공급 우려가 제기되자 정부도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300억원의 정책자금을 지원하겠다며 한주소금에 노후 설비 교체 제안을 했다. 하지만 한주소금 측은 공급량을 유지하려면 신규 설비 증설 뒤 개축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300억원보다 비용이 대폭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주소금 고위 관계자는 “증·개축에 1000억원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증축 문제도 간단하지가 않다. 한주소금은 바닷물을 정제하는 기존 설비 대신 수입산 천일염을 정제하는 설비 증축을 검토 중이다. 이 경우 해양수산부에서 ‘국산’ 대접을 못 받게 된다. 김치 등 전통음식 재료로 공급이 불가능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한주소금은 국민권익위원회에 문제 해결을 요청한 상태다.
그동안 중국산을 쓰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기도 힘들다. 중국산에는 소금이 굳는 것을 방지하는 ‘페로시안화칼륨’이라는 성분이 포함돼 있다. 식약처 식품 공전 상 사용이 허가된 물질이지만 화학식에 청산가리(HCN)의 CN이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사용을 꺼리는 식품 가공업체가 적지 않다.
결국 한주소금 결정이 중요해진 상황이다. 한주소금 고위 관계자는 “다음 달 이사회를 통해 증·개축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