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온 고려인 만남의 장… 풍성한 문화축제 열려

입력 2025-06-09 03:21
고려인 교회들이 7일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고려인 문화 축제에 10여개의 부스를 열고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7일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는 아이의 손을 꼭 잡은 가족 단위 방문객들로 가득했다. 양고기 향이 은은하게 퍼지고 귓가엔 러시아어가 들렸다. 공원 한복판에 ‘고려인 문화축제’라는 팻말과 플래카드, 10여개의 행사 부스가 설치됐다.

이 행사는 이주민시민연대 사회적협동조합(대표 최혁수) 주최로, 전국의 고려인 교회와 성도들이 주축이 되어 서로 교류하고 지역 이웃과 마음을 나누기 위해 마련됐다.

주최 측은 참가자 수를 약 1000명으로 추산했다. 사전에 나눈 900장의 티켓 외에도 현장에서는 소식을 접한 인근 주민들이 자유롭게 찾아와 축제 분위기를 더했다. 특히 안산 천안 경주 등 전국에서 모인 12개 고려인 교회가 주축을 이뤘다. 전국고려인동포교회연합회장인 돈 드미트리 안산 러시안순복음교회 목사는 “우리가 한민족임을 기억하고 이곳에서 신앙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이어가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타지키스탄 출신의 고려인 3세인 그는 “고려인 교회는 숫자는 적지만 언어와 문화의 장벽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고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드미트리 목사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거주하는 고려인 중 기독교인은 약 5000명, 고려인 목회자는 200명 정도로 파악된다.

축제의 흥겨움 이면에는 고려인 사회가 마주한 현실적 고민도 있었다. 고려인 교회를 중심으로 한 자조 활동이 점차 활발해지고는 있지만 ‘자녀 돌봄’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과제로 남아 있다. 드미트리 목사는 “경제활동으로 인해 자녀 교육을 등한시하는 고려인 가정이 다수”라며 “교육은 아이들의 방치를 막고 한국사회에 건강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말했다.

먹거리 부스에 사람들이 몰린 모습.

최혁수 이주민시민연대 대표는 “고려인의 경우 한국 국적을 취득한 후에는 중국의 영향이 큰 조선족과 달리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강한 편”이라며 “저출생과 인구 감소가 심각한 한국사회에서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고려인의 ‘귀국’은 환영받아 마땅한 일이고 이를 돕는 사랑의 손길이 더 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김알료나(45)씨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고려인 3세로 현재 화성 남양순복음교회 사모이자 ‘리틀엔젤돌봄의집’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요즘은 단순한 생계보다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젊은 고려인이 많다”며 “속칭 ‘이단’으로 분류된 단체들이 이주민의 이런 필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현실은 교회가 돌아봐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고려인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러시아 연해주 일대로 이주한 조선인의 후손이다. 1937년 스탈린 정권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흩어졌고 이후 후손들이 각지에 정착했다. 2004년부터 우리 정부가 재외동포(F-4) 비자를 본격 발급하면서 약 10만명이 국내에 귀환해 정착한 것으로 추산된다.

안산=글·사진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