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하얗게 센 무녀의 첫마디는 “아휴, 집 찾느라 고생을 했어”였다. 9년 전 주소지만 보고 찾아간 점집에서 들은 말이다. 기자가 찾아온 과정을 마치 멀리서 다 보고 있었다는 투였다.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점집은 실제로 구불구불한 비탈길을 한참 헤매던 끝에야 나타났다. 그때 마침 텔레비전에서는 국정농단 의혹으로 코너에 몰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시 청와대와 무녀가 등장하는 풍문에 관해 준비한 질문을 꺼냈다. 무녀는 “나는 정치인을 알고 있어서 오히려 큰 피해를 입었다”는 식의 비껴가는 말만 되풀이하며 의혹을 부인했다.
정치인과 중대사를 논의했다는 무속인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최근 사례로는 ‘건진법사’ 또는 ‘고문’으로 불린 전성배씨가 있다. 검찰은 전씨가 연루된 각종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전씨가 통일교 측으로부터 샤넬백을 포함해 고가의 선물을 받아 김건희 여사에게 청탁과 함께 전달했는지를 밝히는 수사다. 청탁금지법이나 뇌물 혐의를 규명하는 목적과는 별개로 무속 비즈니스의 실체를 수면 위로 끌어낸 수사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전씨는 이른바 ‘기도비’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 건당 기도비가 1000만원부터 수억원에 달했다고 한다. 전씨 아내 계좌에는 2017년 7월 말부터 이듬해 12월 초까지 6억4300여만원이 기도비 명목으로 입금된 것으로 조사됐다. 약 1년4개월간의 수입이 6억원을 넘긴 것이다. 이와 별도로 전씨가 현금으로 쌓아놓은 돈만 1억6500만원이었다. 기도 스케일을 키우려고 다른 무속인을 동원한 데 들어간 비용을 제하더라도 어마어마한 고수익 사업인 셈이다.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말도 했다고 한다. 전씨 자신이 신통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정재계 고위 인사들과 교분을 쌓을 수 없었을 거라는 얘기였다. 전씨는 건당 1억원 이상의 업계 상위권 기도비를 받을 수 있던 것도 이런 능력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건진법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의 공천개입 의혹과 관련해 재판을 받는 ‘지리산 도사’도 있다. 12·3 비상계엄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군 간부 출신 ‘보살’에다 윤 전 대통령의 멘토로 급부상했던 ‘천공’까지 등장했다. 한 정권에서 이처럼 다채로운 무속인이 차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전례도 찾기 어렵다.
이들 무속인의 공통점은 나름의 수익 모델을 갖췄다는 점이다. 무속인 행세를 하면서 정치인, 관료 등과 친분을 쌓은 뒤 공천이나 인사, 각종 사업 인허가 등에 관한 청탁을 해주고 돈을 받는 비즈니스가 그중 하나였다. 이 같은 장사를 하는 무속인의 영향이 커질수록 민주적인 국가 운영은 어려워진다. 정책 투명성은 떨어지고 특정 무속인의 영향력이 커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와 결합한 무속 비즈니스가 민주주의 시스템을 위협한다고 말할 수 있다. 비선 정치도 문제인데 ‘무속 비선’이 국가 중대사를 논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손바닥에 ‘왕(王)’ 자를 쓴 채 대선 경선 토론회에 나온 윤 전 대통령을 보며 많은 사람이 혀를 찬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점집 찾느라 고생했다는 9년 전 무녀의 말도 일종의 비즈니스 화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찾아가기 어려운 데 있는 점집을 찾느라 고생했다는 말은 어려운 수학 문제 푸느라 고생했다는 말처럼 특별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무속 비즈니스는 신통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꾸미는 것에서 시작하곤 한다. 새 정부는 곳곳에 드리워진 무속의 그림자를 걷어내기 바란다.
김경택 사회부 차장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