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희망의 신비로움은 나를 춤추게 합니다

입력 2025-06-10 03:04

조직검사 결과가 악성으로 나왔다는 말을 들을 때 세상이 멈춘 것처럼 느껴집니다. 오랜 시간 간절히 기도했지만 몸은 회복되지 않고 병세는 오히려 악화될 때도 있습니다. 그런 순간마다 절박한 마음으로 묻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어디 계신가요.’ 이런 경험은 비단 질병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수년간 애써 준비했던 일이 물거품이 되고 기도하던 관계가 끝나버리며 믿었던 사람에게서 상처받을 때도 우리는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까.” 기적이 보이지 않는 그 자리에서 삶은 여전히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버텨야 하고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할까요.

희망의 신비로 나아가는 여정의 시작은 내려놓음입니다. 내려놓을 때 희망은 우리 안에서 싹틉니다. 절망적인 시대일수록 희망은 더 깊은 내면에서 피어납니다. 욥처럼 모든 것을 잃고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을 때 우리는 진정한 희망을 경험합니다. 욥은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라는 확신으로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가졌습니다. 희망은 현실을 외면하는 망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픈 현실을 껴안고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신비입니다. 눈앞의 상황이 점점 나빠진다 해도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이것이 믿음이며 희망입니다.

희망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자라납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물속의 물고기를 감싸는 물처럼 우리를 둘러쌉니다. 히브리어 ‘헤세드’는 무조건적인 사랑이자 존재를 가능케 하는 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전자기장 안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을 따지지 않으며 우리가 실망하거나 실패해도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죽기 전에 죽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기 뜻을 내려놓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칼을 든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하신 말씀은 자기주장과 본능적 반응을 내려놓으라는 요청입니다. 때로는 고난이 우리 손에 쥔 ‘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칼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르게 됩니다. 저항이 아닌 순종, 힘이 아닌 사랑, 그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죽음을 이긴 사랑은 자신을 내려놓을 때 시작됩니다.

희망의 신비는 우리를 춤추게 합니다. 하나님은 슬픔을 춤으로 바꾸십니다.(시 30:11) 고통 중에도 하나님을 놓지 않을 때 성령은 우리 안에 기쁨을 회복시키십니다. 기적은 병이 낫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잃지 않는 것, 그 안에서 다시 웃는 것입니다. 희망은 눈물을 닦고 다시 걸음을 떼는 용기를 줍니다. 춤추듯 살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깊은 신앙의 고백일 수 있습니다.

희망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와 사랑 안에서 피어납니다. ‘죽기 전에 죽기’ ‘칼을 칼집에 꽂기’는 그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아무 기적도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다시 손을 들어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의 슬픔을 춤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김광덕 목사 (사랑의빛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 사랑의빛교회는 2001년 6월 김광덕 목사와 이술희 목사가 함께 개척한 이후 부부가 같이 목회하며 건강하게 성장해온 교회입니다. 매일 새벽예배를 통해 365일 쉬지 않는 영성을 지켜가고 있으며 무료 심리상담으로 지역사회에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