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화성·금성보다 지형 지도화 더뎌
유인탐사로 확인된 곳 0.001% 불과
트럼프 시대 美, 광물 탐사·채굴 시동
환경·윤리적 고민해야 할 시점 도래
유인탐사로 확인된 곳 0.001% 불과
트럼프 시대 美, 광물 탐사·채굴 시동
환경·윤리적 고민해야 할 시점 도래
심해는 여전히 과학이 필요한 미지의 영역이다. 빛이 닿지 않는 어둠, 높은 압력, 낮은 온도의 극한 환경에 열수 분출구와 그 주변에 독특한 생태계가 형성돼 있으며, 외계 생명체 존재 가능성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또한 풍부한 광물은 미래 자원 공급지로 주목받고 있으며, 기후 조절과 해양 생태계 유지 기능으로 지구의 건강을 떠받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제 심해는 과학의 영역을 넘어 점점 국가 간 전략과 경제의 무대로 들어가고 있다.
인간이 심해에 주목하기 시작한 150여년 전 쥘 베른은 ‘해저 2만리’에서 그곳을 정의로운 공간으로 표현했다. “바다는 폭군들의 소유가 아니다. 수면 아래 30피트 깊이에서는 그들의 지배가 끝나고, 영향력이 약해지며, 권력이 사라진다.” 몇 달 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정학 전문가들이 이제 베른의 믿음은 틀렸음을 경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러 나라가 민족주의 정치 논리를 앞세워 심해의 해저, 해협, 해산과 산맥까지 해양 지형에 자국의 흔적을 영구히 남기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 해저지명목록집(GEBCO)에 우리나라는 현재까지 61개(태평양 20개, 남극해 14개 등) 우리말 해저 지명을 등재했다. 세계 10위권 밖이다. 상위 국가는 615개의 일본을 선두로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이다. 이는 과학적 탐사의 결과를 바탕으로 조용히 진행 중인 해양 영향력 확보의 상징이다.
심해 탐사는 해저 지도 작성, 시각적 조사 및 시료 채집 3단계로 이루어진다. 해저 지도 작성을 위한 조사는 전자기파를 이용하는 저해상도의 위성 관측과 음파를 이용하는 고해상도의 소나 관측으로 나뉜다. 지난 30년간 위성 관측을 통해 지구 전체 해저의 약 95%가 대략 5㎞ 해상도로 지도화됐다. 반면 해저 지명의 근거로 사용되고 보다 실용적인 선박 기반 소나 관측 자료로는 현재 약 26%만이 약 100m 해상도로 지도화된 상태다. 물이 없는 달, 화성, 심지어 금성의 지형도보다 낮은 수준이다. ‘우주보다 바다를 더 모르고 있다’는 말이 단순한 과장은 아니다.
다음 단계는 시각적 조사다. 심해 연구에 가장 중요한 수단의 하나인 영상화는 다양한 잠수정과 영상 처리 기술로 해양학 발전을 이끌어 왔다. 갈라파고스 해역에서 발견된 열수 분출구, 블랙 스모커와 뜨거운 용출수, 해저 부근의 독특한 생태계, 다양한 형태의 해양 생물들, 금속 덩어리가 흩어진 해저면 모습 등은 시각적 조사로 밝혀진 결과들이다. 그러나 인간이 직접 본 사례는 극히 일부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1958년 이후 유인 탐사로 확인된 심해저는 전체의 0.001%에 불과하며, 이 면적은 제주도의 약 1.5배에 지나지 않는다.
마지막 단계인 시료 채집은 전적으로 기술에 의존한다. 특히 수중로봇 기술의 발달은 잠수정과 그에 장착된 다양한 정밀 장비의 활용을 가능하게 했다. 이를 통해 혹독한 환경에서 생물체와 퇴적물을 채집하고, 실험 장비를 설치하며, 열수 분출구 주변의 화학적 특성을 감지하고 측정한다. 과학의 진보는 획기적인 기술 발달과 함께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제 심해 연구는 기술과 과학에 더해 정책이라는 새로운 축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 유엔은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해양과학 10년(the Ocean Decade 2021~2030)을 선포하고, 심해 탐사를 국제 정책 의제로 끌어올렸다. 이에 따른 심해 관련 핵심 프로그램의 예로 10년 안에 정밀한 전 세계 해저 지도 완성을 목표로 하는 ‘시베드 2030’과 10만종의 새로운 해양 생물종을 발견하고자 하는 ‘오션 센서스’ 등이 있다. 심해 탐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사업들이다. 과거에는 심해 탐사를 정부와 연구기관이 주도했지만 이제 자선단체와 산업체의 참여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심해가 국가 간 전략과 경제적 경쟁의 무대로 전환되는 상황은 가속화되고 있다. 세계 통상 질서를 흔들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은 이제 심해까지 뒤흔들 기세다. 지난 4월 공해에서의 심해 광물 탐사와 채굴을 장려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유엔 해양법 협약에 따라 설립된 국제해저기구(ISA)가 10년 전부터 채굴 규정을 준비 중이지만 환경영향 우려와 국가 간 이견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 ISA가 발급한 30건 탐사 허가 중 중국은 5건, 우리나라는 3건으로 허가 발급 상위 국가에 속한다. 그러나 채굴 허가는 하나도 발급하지 못한 상황에서 심해가 자원 확보를 둘러싼 국제 경쟁의 각축장으로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심해 탐사와 연구는 더 이상 모험가나 과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관측 기술이 더욱 정밀해지고, 국제 연구가 활발해지며, 각국 정책이 자원 경쟁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심해는 복합적인 이해와 접근이 필요한 공간이 됐다. 하지만 동시에 중요한 질문도 제기된다. 우리는 심해를 미래의 자원 창고로만 볼 것인가. 채굴이 이뤄지면 생태계 복원은 거의 불가능하며, 해저의 탄소 흡수 기능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심해의 경제적 활용을 둘러싼 과학자, 환경단체, 정책 입안자, 산업체 간의 논쟁은 차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운 심해 탐사 시대는 기술 의존도가 더욱 높아지겠지만 기술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투명한 과학적 접근, 국제 협력, 그리고 미래를 보는 윤리적 고민이 함께해야 한다. 심해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그 신비로움은 줄어들지 몰라도 책임의 무게는 더 커질 것이다. 심해의 문을 다시 열고 있다. 그곳을 지배할 것인지, 공존할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재학 한국해양한림원 석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