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경포당’으로는 미래가 없다

입력 2025-06-09 00:38

유권자 수 가장 많은 경기도
국힘, 10년 이상 지지세 축소
"선방했다"며 방치할 것인가

동서로 선명하게 나뉜 이번 대선 표심을 보면서 국민의힘은 내심 안도했을 수 있다. 45년 만의 계엄, 그리고 8년 만에 다시 맞은 탄핵, 사상 초유의 후보 교체 시도 파동을 겪고도 40% 넘는 표를 받았으니 이 정도면 ‘선방’했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선거 결과를 차근차근 복기해 보면 안도할 처지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동서로 나뉜 표심은 달리 말하면 국민의힘 집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전체 유권자의 51%가 있는 서울·인천·경기에서 국민의힘은 모두 패배했다. 특히 광역단체 단위에서 유권자가 가장 많은(1171만5343명) 경기도에서 14.25% 포인트(131만6528표) 차로 참패한 건 국민의힘이 가장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경기도는 윤석열 전 대통령보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5.32% 포인트(46만2810표) 더 많은 표를 줬지만, 이 격차가 더 벌어진 것이다.

경기도 표심은 이번 대선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였다. 국민의힘은 재선 경기지사 출신 김문수 후보를 내세우면서 이번 대선을 ‘전직 경기지사 간 대결’로 프레이밍하려 했다. 김 후보가 2006년부터 2014년까지 8년간 도정을 맡으면서도 가족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이나 측근 비리가 없었고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추진, 광교·판교 신도시 개발 등 치적이 많다는 걸 부각했다. 당 차원에서 경기도를 ‘전략지역’으로 지정하고 김 후보가 직접 선거운동 기간 여러 차례 경기도를 구석구석 돌기도 했다. 보수 진영 내에서 “김문수를 다시 알게 됐다”는 호평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경기도 유권자들은 이 대통령에게 압도적으로 표를 몰아줬다. ‘인물론’으로 수도권 표심을 공략하려던 국민의힘 전략이 실패한 것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고학력자가 많은 수도권 특성상 보수 진영이 제기한 이 대통령 개인의 도덕성 문제보다 민주주의 질서를 위협한 계엄에 대한 심판론이 표심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했다. 뒤늦게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는 했지만 계엄, 탄핵 등에서 어정쩡한 스탠스를 유지한 국민의힘 이미지가 수도권 참패 배경이라는 얘기다.

이번 대선의 특수성과 별개로 이미 수년째 진행 중인 경기도의 ‘탈(脫)국힘화’도 국민의힘이 진지하게 들여다볼 문제다. 2012년 이후 네 번의 총선(19~22대)을 거치면서 경기도 내 국민의힘 계열 정당 의석은 21석→19석→7석→6석으로 계속 쪼그라든 반면 민주당 계열 정당 의석은 29석→40석→51석→53석으로 계속 늘었다. 기초단체장도 최근 두 번의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한 자릿수 배출에 그쳤다. 그동안 경기도 유권자 수는 936만여명(2012년)에서 1171만여명(이번 대선)으로 235만여명 늘었고 앞으로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경기도 한 신도시의 당협위원장은 “지역구에는 서울로 출퇴근하면서도 서울의 비싼 집값, 임대료에 밀려 넘어온 30, 40대 세입자들이 상당히 많다”며 “이들에게 선거 때 지역개발 공약 같은 건 씨알도 안 먹힌다”고 토로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분투하는 생활인들에게 보수 정치권이 뭘 해줬는지 뚜렷하게 잡히는 게 없다. 그동안 국민 눈에 주로 비친 건 친이·친박, 친윤·친한 등이 끊임없이 나뉘어 먹고사는 문제, 국가적 과제와 무관한 일로 싸우는 모습 아닌가. 대선 이후에도 이런 모습이 재현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은 달랐느냐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민주당은 가진 자와 아닌 자를 갈라치기한다는 비판을 들으면서도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에게 그들의 편이라는 시늉이라도 했다. 건전재정, 포퓰리즘 배격 같은 표 얻기 힘든 철학을 추구할 거면 다른 데서라도 ‘보수의 품격’을 보여줘야 했지 않았나. 지금 같은 ‘경포당’(경기도를 포기한 정당) 이미지로는 국민의힘이 민주당 정권의 실책에 잠깐 반사이익을 얻을지는 몰라도 한국 정치의 주류로 다시 부상하기는 영영 어려울 것이다.

이종선 정치부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