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국가 마비’라는 진통을 겪으면서 맞닥뜨린 탄핵 정국의 긴 터널을 드디어 빠져나왔다. 다행히 한국 사회는 헌정질서로 복귀하는 민주주의 회복력을 보여줬고, 이재명정부가 탄생했다. 그러나 신정부 앞에 펼쳐진 국내외적 현실은 준엄하다. 국내적으로는 사회 통합과 경제 회복의 급박성에, 대외적으로는 미·중 갈등 심화에 따른 중간자적 부담이 가중됐다. 여기에 우리의 안전을 직접 위협하는 북한 정권의 호전성도 여전하다.
그사이 미국에서는 더욱 강력한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관세의 이데올로기화를 통해 세계를 관세전쟁의 소용돌이에 빠뜨렸다. 그러나 적과 나를 가리지 않는 트럼프식 관세주의는 중국의 강력한 맞대응은 물론 우방들의 상당한 저항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종전을 공언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 논의는 물론 이스라엘과 이란의 중동 충돌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대혼란 정국이다.
특히 미·중 관세 갈등은 점입가경이다. 양국은 지난 4월 11일 제네바에서 90일간의 휴전에 일단 합의했지만 여전히 힘겨루기에 몰두하는 양상이다.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를 지속하고 있고, 미국은 이를 합의 위반이라며 화웨이 제재 등 반도체 부문에 대한 강력한 통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다행히 양국 정상은 지난 5일 130여일 만에 공식 통화를 통해 후속 협상에 합의했고, 이에 따라 9일 런던에서 양국 경제 수뇌부가 총출동하는 무역 협상이 열릴 예정이다.
미·중 갈등은 무역 전쟁으로 포장됐지만 실제로는 미래 패권을 둘러싼 생사전이다. 미국은 중국 제어를 미국 외교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놓고 중국을 도전자 반열에서 확실하게 탈락시키려 한다. 반면 지금이 미국을 추격하고 극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기는 중국은 모든 분야에서 미국에 밀리려 하지 않는다. 미국에 직접 도전하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사회주의 체제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지구전을 전개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중국과의 교류도 지향하는 ‘국익 중심 실용외교’를 천명하고 나섰다. 그러나 미국은 신정부 출범 축하와 함께 중국의 민주주의 개입 우려라는 경고 메시지를 발송하는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또 취임 사흘 만에 정상 통화로 한·미동맹과 관세 협상에 대한 공감을 확보했지만 한국을 환율 관찰 대상국으로 재지정하고 주한미군 분담금과 연계할 압박 신호도 동시에 보냈다.
물론 한국 신정부의 입지가 전략적으로 무조건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미국에 한국은 특정 분야에서 분명한 경쟁력을 지닌 매력적인 제조업 국가이며, 중국은 물론 북한과 러시아까지 견제할 수 있는 전략적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에 믿을 수 있는 동맹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상당한 요구를 할 것이 자명하다. 중국에도 한국은 한·미·일 3각 공조를 약화시킬 전략 대상이므로 당연히 실용적 협력 분야 확대에 일정한 공간이 존재한다.
미국의 트럼프식 협력 요구와 이에 따른 중국의 반발과 우려는 신정부의 최대 걱정거리다. 여기에 중국의 서해 내해화 전략의 일환으로 보이는 영향력 확장과 깊어지는 양국 국민감정 악화도 고민스럽다. 대만 문제에 대한 중국의 우려, 대륙붕 7광구를 둘러싸고 펼쳐질 일본과의 외교전 및 해양 경계 획정에서 틈을 파고들 중국, 그리고 한국을 ‘교전 중의 적대 국가’로 선언한 북한과의 줄다리기 등 산적한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애매한 전략적 모호성보다 미·중에 대한 적극적 설득을 동반하는 외교력 강화가 절실하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HK+국가전략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