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부가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 규모가 과도하다고 밝히며 일부 기업과 재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세계 반도체 기업에 미국 내 투자를 재촉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관세와 보조금을 둘러싼 미국의 압박이 지속되면서 반도체 업계의 긴장감은 높아지고 있다.
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이날 상원 세출위원회에서 반도체법 보조금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해 보였고(overly generous), 그것들에 대해 재협상하고 있다”며 “모든 거래는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느 기업과 재협상하고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러트닉 장관은 최근 미국 투자 규모를 늘린 대만 TSMC가 성공적인 재협상 사례라고 강조했다. TSMC는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650억 달러(약 88조4000억원)를 투자하고 보조금 66억 달러(약 9조원)를 받을 예정이었는데,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1000억 달러(약 136조원)를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반도체법을 폐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미 상무부는 기업들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대한 보조금 감액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370억 달러(약 50조3000억원)의 미국 현지 투자를 대가로 보조금 47억4500만 달러(약 6조4000억원)를 받기로 했다. SK하이닉스는 38억7000만 달러(약 5조2000억원)를 투자하고, 4억6000만 달러(약 6200억원)를 받을 예정이었다.
미국은 반도체에 대해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품목별 관세 부과까지 예고한 상태다. 최근 정보기술(IT) 제조업체들은 관세 부과에 대비해 범용 D램 등 반도체 제품의 재고를 비축하고 있다.
이 같은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인 압박에 개별 기업 차원에서 대응하는 건 역부족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수밖에 없다”며 “관세나 보조금은 정부 간의 협상을 통해 의미 있는 내용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업계는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반도체 지원책의 실행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반도체 특별법 제정과 국내 생산·판매되는 반도체에 대한 최대 10%의 생산 세액 공제를 약속한 바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국내 매출을 고려하면 두 기업이 받을 세제 혜택은 총 9조원가량으로 분석된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지원책의 내용도 중요하겠지만, 관건은 실행 여부와 시점”이라며 “미국의 압박뿐 아니라 인공지능(AI) 시대에 각국의 반도체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신속한 법 제정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