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후보 강력 지지한 세대
민주화 이후 태어나 보수화 돼
급격한 사회변화에 치이고
기성세대에게 실망했기 때문
‘미숙·이기적’ 낙인 찍지 말고
경청하며 함께 미래 만들어야
민주화 이후 태어나 보수화 돼
급격한 사회변화에 치이고
기성세대에게 실망했기 때문
‘미숙·이기적’ 낙인 찍지 말고
경청하며 함께 미래 만들어야
대선 출구조사를 유심히 봤다. 20대 이하 남성 유권자의 표심이 독특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37.2%)가 김문수(36.9%)·이재명(24.0%) 후보를 제치고 1위였다. 전 연령대와 성별을 통틀어 유일했다. 당선 가능성과 상관없이, 그러니까 사표 방지 심리에 흔들리지 않고 제3의 후보에게 강력한 지지를 보냈다. 낯설었다. 그러나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이들은 1995~2007년 출생했다. 민주화 이후에 태어난 이 세대는 더 개방적이고 평등 지향적인 정치 성향을 가질 것으로 보였다. 부모는 자유분방함을 내세우던 X세대이고, 전교조가 합법화되고 진보적 교육감이 등장하는 등 교육제도도 크게 바뀌었다. 왜 보수화됐을까.
이들의 유년기는 외환위기와 정보기술(IT) 확산으로 경제와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던 시기였다. ‘부자되세요’가 인사말이 되고, 세계와 실시간으로 접속하는 시대였다. 대통령은 김대중·노무현이었다. 북한으로 관광을 가고 광장에선 월드컵 응원이 펼쳐졌다. 청소년기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였다. 자립형사립고, 마이스터교 등 고교 특성화 정책이 도입되고 무상급식, 성평등 교육으로 학교도 홍역을 겪었다. 자율과 평등을 강조하는 교육 기조와 다르게 더 복잡하고 치열해진 입시경쟁을 경험했다. 세월호 사건 역시 정치 인식에 큰 영향을 줬다.
청년기인 문재인·윤석열 정부 시기에 남녀 간 갈등이 사회문제로 부각됐다. 여성가족부 폐지 논란과 강남역 살인사건, 군 가산점과 여성 할당제, 차별금지법 등 젠더 이슈로 첨예하게 갈라졌다. 조국 법무부 장관 문제와 연금개혁도 젊은 세대에게는 민감한 이슈였다. 2022년 이태원 압사 사고와 지난해 비상계엄 사태도 있었다.
같은 20대인데도 여성은 정치 성향이 정반대다. 58.1%라는 절대다수가 이재명 후보에게 표를 줬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 지지가 5.9%로 상대적으로 높은 점도 눈에 띈다. 이준석 후보 지지(10.3%)는 다른 나이대보다는 높았지만 같은 또래 남성들보다는 훨씬 낮았다. 김문수 후보 지지는 25.3%였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교육의 경험을 꼽는 이들이 많다. 여교사가 절대다수다. 체육 활동이 줄어들고 성비위 문제에 더 엄격해지는 등 달라진 학교 환경에 남학생들이 적응하기 상대적으로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여학생이 내신에서 앞서는 건 이미 상식이 됐다. 반대로 젊은 남성은 군대에 가야 하는 등 사회적 책임은 여전히 더 많이 짊어지고 있다. 요즘 학교에선 여학생이 이성교제에도 더 적극적이라고 한다. 남학생들은 혹시라도 성희롱이란 오해를 받지 않도록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소리를 부모와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듣기 때문이다. 이 세대 남성들은 배제와 소외, 부적응의 경험을 쌓아왔다.
기성세대가 보여준 모순도 정치적 불신을 키웠다. 북한과는 대화하고 화해하면서, 국내에선 정치적 반대자들을 적대시했다. 공교육의 책임과 평등한 교육을 강조하던 진보적 정치인들이 자기 자녀는 특목고에 보내거나 해외 유학을 시키는 등 각종 특혜를 누렸다. 부동산 폭등을 막겠다는 정권의 각료들이 갭투자에 열중하고 있었다. 젠더 이슈를 제기하던 정치인의 성추문도 위선으로 보였을 것이다.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은 이들 젊은 남성 유권자들이 전통적 보수정당에서도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남은 선택이 이준석 후보였다. 이 후보는 세대 간, 성별 간 갈등을 전면에 드러내고 논쟁적인 의제를 던지는 정치를 하고 있다. 연금개혁 추진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할 청년층의 입장을 대변했다. 장애인 지하철 시위나 급진적 페미니즘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기성세대의 정치의식에 의문을 품었던 젊은 남성들에게는 신선한 목소리였다.
20대 이하 남성 유권자의 선택을 틀렸다거나 미숙하거나 자신들의 손익을 우선시한다는 식으로 손쉽게 정리해선 안 된다. 펨코(축구·게임을 다루는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 디시인사이드의 세계관에 절어 있다는 식의 낙인이야말로 기성세대의 폭력이다. 이 세대 다수가 정말 일베식 사고방식에 사로잡혔다면 우리 사회는 벌써 큰 혼란에 휩싸였을 것이다.
어쩌면 이들은 기성세대가 보지 못한 모순을 포착하고, 기성 정치권이 찾아내지 못한 해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가서고, 대화하고, 경청하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장에 이들을 초대해야 한다.
김지방 디지털뉴스센터장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