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마지막 장면은 발레리노가 된 탄광 출신 빌리가 무대 위에서 비상하는 것이다. 당시 빌리가 출연한 작품은 영국 안무가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이 작품은 고전 발레의 상징과도 같은 우아하고 가녀린 여성 백조 대신 근육질의 남성 백조를 내세워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95년 초연 당시 깃털 바지를 입은 남자 무용수들이 등장하자 일부 관객들은 야유를 보내며 극장을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압도적인 클라이맥스가 끝나자 남은 관객들은 열광적인 환호와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영국 언론은 호평을 쏟아내며 걸작의 탄생을 알렸다. 그 해 다시 런던 무대에 오른 본의 ‘백조의 호수’는 무용으로는 역대 최장기인 120회 공연되는 기록을 세웠다.
‘현재 생존해 있는 안무가 가운데 가장 유명한’(더 타임스) 매튜 본(65·사진)은 22세라는 늦은 나이에 무용에 입문했다. 직접 춤을 추는 것보다 안무에 재능을 보인 그는 1992년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청소년들의 고아원 탈출 이야기로 재해석해 주목받았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고전 발레에 대한 급진적인 재해석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리고, 그를 대표하는 작품이 바로 ‘백조의 호수’다. 이 작품은 마술에 걸린 백조 등 동화 같은 원작 대신 현대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유약한 ‘왕자’와 그가 갖지 못한 힘과 아름다움, 자유를 표상하는 존재인 ‘백조’의 이야기로 바뀌었다. 본은 앞서 인터뷰에서 “고전 발레를 재안무할 때 클래식 버전과 완전히 다르게 만들려고 한다”면서 “‘백조의 호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를 완전히 지워버릴 수 있는 아이디어로 남자 백조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본의 ‘백조의 호수’가 올해 30주년을 맞아 오는 18~29일 LG아트센터 서울에 6년 만에 돌아온다. 이 작품은 2003년 LG아트센터에서 첫 내한공연을 가진 이래 2005년, 2007년, 2010년, 2019년 재공연을 통해 1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올해 25주년을 맞은 LG아트센터가 그동안 선보였던 작품들 가운데 의미가 큰 피나 바우쉬의 ‘카네이션’(11월 6~9일)과 함께 다시 선보인다.
그런데, 본의 ‘백조의 호수’는 장르가 뭘까. LG아트센터는 올해 이 작품을 ‘엔터테인먼트’로 분류했지만, 그동안 ‘댄스 뮤지컬’로 홍보했다. 티켓 예매 사이트는 올해도 이 작품을 뮤지컬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관객 대부분은 무용으로 인식한다.
결론부터 말해 이 작품은 무용과 뮤지컬, 두 장르 모두에 속한다. 1995년 초연 이후 이 작품은 영국 공연계의 권위 있는 올리비에상 시상식에서 뮤지컬 부문이 아닌 무용 부문 작품상을 받았다. ‘백조의 호수’를 비롯해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 본의 작품들은 영국에서 무용, 구체적으로는 댄스 시어터(무용극)로 분류된다. 실제로 본이 이끄는 ‘뉴 어드벤처스’ 역시 스스로 댄스 시어터 컴퍼니라고 소개한다.
반면 1998년 미국에서 선보인 이 작품은 이듬해 토니상 시상식에서 뮤지컬 부문 연출상, 안무상, 의상상을 받았다. 이 작품이 노래는 없어도 음악이 춤, 연기와 어우러져 뮤지컬의 요소를 만족시킨다고 본 것이다. 본의 ‘백조의 호수’가 토니상을 받고 나서 몇 달 뒤 수잔 스트로만의 ‘컨택트’가 나오면서 브로드웨이에서는 춤을 전면에 내세운 ‘댄스 뮤지컬’이란 용어가 자리잡았다.
이와 관련해 2005년 처음 내한한 본은 “‘백조의 호수’ 등 당신의 작품을 어떤 장르로 분류하면 되느냐”는 한국 언론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때로는 무용, 때로는 연극, 댄스 뮤지컬, 댄스 시어터로 불리기도 한다. 나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관객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