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중절을 해보고 싶다.” “다시 태어나면 고급 창부가 되고 싶다.”
지난 2023년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화제가 된 소설 ‘헌치백’의 주인공 샤카의 꿈이다. 비윤리적으로 보이지만,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보고 싶은 샤카의 위악적인 표현이다. 샤카는 선천적 근세관성 근병증이라는 희귀병으로 목에 기관절개 호스를 꽂고 등뼈가 S자로 심하게 휜 40대 중증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그룹홈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그는 온라인에선 야한 소설과 글을 연재하며 성(性)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다. 그러다가 그의 비밀스러운 이중생활을 포착한 남성 간병인과 만나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된다.
‘헌치백’은 일본 여성 작가 이치카와 사오가 2023년 발표해 일본 문학계를 들썩이게 했다. 작가 본인이 작품 속 샤카와 같은 희귀병을 앓는 중증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일본 문학계 최고의 신인상인 아쿠타가와상은 이 작품에 대해 장애인의 성 문제를 파격적인 서사와 감각적인 표현으로 그려낸 ‘당사자 문학’으로서 의미를 높게 평가했다. 일본에서 중증 장애인 작가가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것은 이 작품이 최초다.
‘헌치백’을 세계 최초로 무대화한 동명 연극이 오는 12~15일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올라간다. 연출은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시련’ ‘테베랜드’ 등으로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는 신유청(사진)이 맡았다. 극작가 김도영과 번역가 김진숙이 공동으로 담당한 대본은 장애인의 내밀한 욕망과 사회적 차별의 현실을 그린 원작의 당사자성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기 위해 소설의 문장을 대사로 변형하지 않고 서술형 문장을 그대로 사용한다. 각색보다는 윤색에 가깝다. 신유청은 “소설을 단순히 무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읽고 난 뒤 각자가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과 해석을 무대에서 공감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대 위에는 4명의 비장애인의 배우와 1명의 지체장애인 배우가 등장해 원작의 서술문을 번갈아 가며 말한다. 이와 함께 1인칭 시점에서 쓰인 주인공 샤카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비장애인 배우 황은후와 장애인 배우 차윤슬이 같은 배역으로 무대에 함께 오르는 독특한 방식을 택했다. 두 명의 샤카는 서로를 자신이자 타자로 비춰내며 캐릭터의 내면까지 조명한다.
이번 연극은 원작에 취지에 걸맞게 공연 접근성도 대폭 높였다. 4명의 수어 통역사가 배우들의 서술과 움직임을 따라가는 그림자 통역으로 수어 통역을 제공한다. 무대 위 변화와 배우들의 움직임은 폐쇄형 음성해설(수신기를 통해 관람에 필요한 정보가 실시간 음성으로 송출되는 것)로, 대사는 영상 자막으로 보여준다. 공연 당일에는 점자가 포함된 무료 프로그램북이 마련될 예정이다.
장지영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