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감리·성결교 영향 주고받으며 연합 통한 찬송가집 밑거름

입력 2025-06-07 03:08
서울 종로구 한국찬송가공회 내부에 설치된 한국찬송가역사박물관 모습으로 한국 찬송가 편찬의 발자취가 연대순으로 정리돼 있다. 한국찬송가공회 제공

지금까지 한국 찬송가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1892년 ‘찬미가’로 시작해 ‘찬양가’ ‘찬숑가’ ‘부흥성가’ ‘신정찬송가’ ‘신편찬송가’ ‘합동찬송가’ ‘새찬송가’ ‘개편찬송가’ ‘통일찬송가’ ‘21세기 새찬송가’까지 11개 찬송가집이 제작됐다. 선교사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첫발을 뗀 찬송가 제작은 각 교단의 노력과 한국교회 성도들의 사랑을 받으며 발전해 왔다. 이제 지금까지 소개한 대표적 찬송가집의 특징을 두 차례에 걸쳐 요약하면서 한국 찬송가 역사의 큰 흐름을 조망하고자 한다.

찬미가는 1892년 존스 선교사와 로스와일러 선교사가 편찬한 찬송집이다. 미 감리교 선교부의 후원으로 최초 27곡의 가사 판으로 출간됐으며 1895년 정식 가사 1판이 출판됐다. 지속적인 개정 작업을 통해 1905년 최종 8판에서는 183곡으로 증보됐다. 개정 과정에서 다수 선교사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했으며 언더우드와 안애리(Annie L Baird) 선교사 등이 번역을 담당했다. 노블 존스 루이스 스크랜턴 선교사 등은 직접 작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1894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제작한 찬양가는 117곡의 악보와 가사가 함께 수록된 최초의 악보 찬송가이다. 1898년까지 4판이 제작됐으며 1908년 찬숑가(262곡)로 증보되기 이전까지 10년간 서울과 전라 지역을 중심으로 북미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널리 사용됐다. 찬양가는 찬숑가 신정찬송가 신편찬송가로 이어지는 한국 찬송가의 계보를 형성하는 데 중요 역할을 담당했다.

1908년 장로교와 감리교가 연합해 찬숑가 가사판 262곡을 출판했다. 초판은 장로교의 찬양가에서 30편, ‘찬셩시’(1905)에서 113편, 감리교의 ‘찬미가’에서 82편을 채택하고 나머지 31곡을 새로 선별해 구성했다. 찬숑가는 꾸준한 개정으로 1942년 최종본에서 317장까지 증보됐다. 찬숑가는 감리교의 신정찬송가와 장로교의 신편찬송가가 출간되기까지 20년간 두 교단이 공동 사용했다. 한국 찬송가 발전사에서 장·감 선교사들의 연합 결실이자 후대에 교회 연합을 통한 찬송가집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성결교회의 찬송가 역사는 ‘복음가’(1907)에서 시작해 ‘신증복음가’(1919)를 거쳐 1930년 부흥성가로 이어진다. 부흥성가는 신증복음가에 32곡을 증보했다. 부흥성가 편집 시에는 당시 애창되던 타 교단 찬송가집을 최대한 활용했으며 신증복음가의 경우 찬숑가와 비교해 70개 이상의 곡에서 동일한 번역을 채택했다. 성결교회의 찬송가는 초기 한국교회 주류였던 장로교와 감리교 찬송가의 영향을 받았지만 성결교의 4중복음(중생·성결·신유·재림) 신앙을 강조하며 성령세례와 오순절적 부흥 집회를 중시하는 독특한 신학·음악적 특징을 보여줬다.

신정찬송가와 신편찬송가는 일제강점기 1930년대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복음의 희망을 이어가고자 했던 선배들의 노력으로 탄생한 찬송가집이다. 신정찬송가는 찬숑가를 개정 증보한 것이다.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가 제작을 담당했으며 아펜젤러 선교사가 위원장으로 4년간 개정작업을 진행, 314장을 선정했다. 이중 80여곡이 통일찬송가(1983)에 수록됐으며 66곡은 번역이 그대로 유지됐다. 당초 장로교와 감리교가 공동 사용하기로 제작했으나 감리교만 사용했으며 장로교는 단독으로 신편찬송가(1935)를 제작했다. 장로교총회 종교교육부에서 제작한 이 찬송가는 총 400장으로 구성됐다.

1946년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는 찬송가합동연구위원회를 조직해 새로운 찬송가 편찬에 착수했다. 1년여 연구를 거쳐 1948년 각 교단 총회의 승인을 받아 1949년 586곡으로 구성된 합동찬송가를 출간했다. 신편찬송가와 신정찬송가, 부흥성가에서 90% 이상 선별해 편집했으며 각 교단의 신학 정체성이 투영된 찬송들이 조화를 이뤘다. 합동찬송가의 교단별 편입 비율은 장로교 40%, 감리교 30%, 성결교 20%로 설정됐으며 각 교단이 선호하는 곡을 우선 수용하면서도 교단 간 균형을 유지해 연합 정신을 구현했다.

김용남 한국찬송가공회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