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이대학교에서 수업할 때 기라 가나에 선생을 처음 만났다. 한국 문화를 깊이 좋아하는 분이었다. K팝이나 드라마가 일본에서 인기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한류를 즐기는 이를 직접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내가 물었다. “좋아하는 가수 있으세요?” 잠시 머뭇거리던 선생은 수줍게 말했다. “스윗소로우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선생은 한국 소설을 번역하며 됴쿄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지금 내가 머무는 레지던시는 도쿄 가구라자카에 있다. 선생은 그곳을 ‘도쿄의 중심가’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국에서는 그런 곳을 ‘노른자’라고 부른다고 덧붙였다.
“숙소는 지낼 만한가요?” 선생이 물었다. “좋아요. 6조 다다미방이에요.” 그 말을 듣자 선생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아직 그런 방이 남아 있나요?” 나는 그래서 더 귀하다고 했다. “윤동주 시인이 묵었던 방이랑 크기가 같네요.” 선생이 그 말을 하는 순간 작은 돌멩이를 삼킨 듯 가슴에 무언가 내려앉았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쉽게 씌어진 시). 이 시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에야 이 시를 처음 읽은 것이다. 다다미 위에 엎드려 시인 윤동주를 생각하며 글을 쓴다.
사쿠라 폭풍이 휘몰아칩니다./ 현재와 과거가 붐비는 교차로에서 우리는 마주 섰습니다./ 그 사이를 가로질러 인력거가 지나갑니다./ 포승줄에 묶인 손, 딛는 발자국마다 핏물이 고입니다./ 이것은 꿈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서정을 버립니다./ 수사학을 버리고, 남의 나라 말을 버리고 핏방울을 따라갑니다.
당신으로 인해 대속받은 역사가 여기 있습니다./ ‘역사’라는 말은 피로 얼룩졌습니다./ 내 나라의 말로, 시인 동주를 불러봅니다./ 내 나라의 이름으로, 시인 동주를 불러봅니다./ 흐린 거울을 소매로 닦듯이, 그 이름을 꺼내어 닦아봅니다./ 바람도 없이 풍령이 울립니다. 풍령이 울립니다. 풍령이 울립니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